케이티 로이프, 《바이올렛 아워》
수전 손택 평전 다니엘 슈라이버의 《수전 손택: 영혼과 매혹》은 수전 손택의 죽음으로 끝난다. 당연한 것 같지만, 대부분의 평전은 그렇지 않다. 죽은 후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는 있게 마련인데, 여긴 그렇지 않다. 그렇게 수전 손택의 죽음으로 끝낸 책을 가만히 보다 문득 수전 손택의 죽음을 다룬 책을 읽었었단 기억이 났다. 바로 케이프 로이프의 《바이올렛 아워》.
수전 손택을 포함한 다섯 명의 죽음을 기록한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처음 읽을 당시 나는 수전 손택에 대해서 이름만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의 죽음에 관해 별 달리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손택의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만은 사실이었다. 몇 달 후 《은유로서의 질병》을 읽었다. 그 책을 먼저 택한 이유도 아마 손택의 죽음부터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손택은 두 번이나 암을 이겨냈다. 1974년 40대 초반 유방암 4기 진단을 받았었고, 1998년에는 자궁암 진단을 받았다. 그때마다 악착같은 삶의 희망으로 공격적인 치료를 시도했고 결국 이겨냈다. 그러나 2004년 세 번째 찾아온 암, 이번에는 아마도 이전 암을 치료하기 위해 썼던 방사선이 원인이 되었을 혈액암, 즉 백혈병이었고, 일흔이 넘은 나이에 그것마저 이겨낼 수는 없었다. 케이티 로이프의 《수전 손택: 영혼과 매혹》의 2장은 바로 그 수전 손택의 마지막을 기록하고 있다.
무심히 넘겼을 2장의 제목은 “나는 죽음을 거부한다”이다. 그리고 “결코 죽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그 결심을 꿋꿋하게 실천하며 끝까지 죽음에 대항한 사람”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더 이상 손택이 죽음에 대해 가졌던 태도를 달리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표현들이다. 죽음은 분명 운명이고, 손택 역시 그 운명을 끝까지 거부할 수는 없었지만, 그러나 그 운명을 결코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에게 삶의 ‘질’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삶 자체’가 중요했으며 그러므로 살아야 했다.
살아있는 내내 자신에 관한 신화에 열중했던 그가 그렇게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어쩌면 그 신화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그렇다면 죽음을 완벽하게 이겨 냈다는 신화, 죽음이란 역경을 이겨 내고 살아남았다는 신화는 그녀가 그때까지 만들어 낸 최고의 거짓말이 아니었을까?, 113쪽). 그래서 그에게는 환상이 필요했다. 지고 있지만 결코 지고 있지 않다는(절대 ‘죽음’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두 번은 승리했지만, 마지막은 승리할 수 없었던.
죽음 앞에서 손택은 평범해지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도 죽음이라는 운명 앞에서는 똑같다. 손택도 마찬가지였다.
“손택은 결코 평범하게 전락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고 맹세했지만, 어쩔 수 없이 평범한 사람으로 변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