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닐 그라닌,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르비치 류비셰프. 이 이름조차 낯선 소련의 과학자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물론 그는 다방면에 걸쳐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곤충학, 분류학, 진화학을 연구한 생물학자였지만, 또한 역사학자였고, 철학가이기도 했다. 사실 그 이상이었다. 온갖 분야에 전문가 수준의 소양가 함께 비평의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시간통계 분석이라는 놀라운 방법을 가지고, 초인적인 시간 활용을 한 인물이 바로 류비셰프이기 때문이다. 그 다방면에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그런 시간통계 분석을 통해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1972년 그가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다름 아니라 그가 남겨 놓은 원고의 양 때문이었다. 70여 권의 학술서적과 단행본 100권 분량에 달하는 연구 논문이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방대한 양의 학술자료와 꼼꼼하게 수제본한 수천 권의 소책자들이 있었고, 또 20대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작성한 일기가 있었다. 거기에 적힌 것들은 그 양의 방대함뿐만 아니라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담고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류비셰프가 연구실에만 틀어박혀서 시간에 쫓기듯 살아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잘 쉬었고, 또 충분히 잠을 잤다. 연구를 하다 지치면 산책에 나섰고, 논문을 쓰다가도 단테와 셰익스피어를 읽었다. 가족과 지인, 동료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썼으면 뜨개질도 했다. 그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 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그의 일기에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단 1분도 빠뜨리지 않고 기록했다.
그의 일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기와는 조금 달랐다. 하루에 있었던 중요한 일을 기록하고, 감상을 적는 식이 아니었다. 어느 하루를 보면 이런 식이었다.
1964년 4월 7일, 울리야노프스크.
・ 곤충분류학: 알 수 없는 곤충 그림을 두 점 그림. 3시간 15분
・ 어떤 곤충인지 조사함 - 20분 (1.0)
・ 추가 업무: 슬라바에게 편지 - 2시간 45분 (0.5)
・ 사교 업무: 식물보호단체 회의 - 2시간 25분.
・ 휴식: 이고르에게 편지 -10분.
・ 울리야노프스카야 프라우다 誌 - 10분.
・ 톨스토이의 《세포스토폴 이야기》 - 1시간 25분.
기본 업무 ? 6시간 20분.
모든 날짜의 일기가 이런 식이었단다. 그는 자신의 일을 모두 분 단위로 기억하고 기록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한 달의 것을 정리하고 일 년의 것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그는 시간을 물질처럼 사용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했던 것이다.
류비셰브, 그는 천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용감했다. 시간에 맞섰고, 그럼으로써 시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다닐 A. 그라닌이 이 책을 쓰고 발표한 것은 1970년대라고 한다. 이 책을 국내에 출판하게 된 과정을 출판사 황소자리 대표는 <교수신문>에서 밝힌 바 있다. 러1990년대 러시아어에서 중국어로 번역된 책을 다시 한국어로 중역된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류비셰프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2003년 지인을 통해 저자인 다닐 A. 그라닌과 접촉할 수 있었는데, 1919년생인 그가 아직도 활동 중이었고, 출판을 위해 5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는 계약서를 내밀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아예 한국어 판권을 출판사에 양도한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그럼 나는 어떻게 이 책을 알게 되었나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겠다. 이 책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동아사이언스>의 “과학자의 서재”라는 연재를 통해서였다. 이정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의료정보연구실 선임연구원에 대한 인터뷰(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40922)에서 ‘나를 바꾼 책’으로 이 책을 소개했다.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습관을 바꿀 수 있었다고 했다. 나도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