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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Nov 07. 2020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다닐 그라닌,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르비치 류비셰프이 이름조차 낯선 소련의 과학자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물론 그는 다방면에 걸쳐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그는 곤충학분류학진화학을 연구한 생물학자였지만또한 역사학자였고철학가이기도 했다사실 그 이상이었다온갖 분야에 전문가 수준의 소양가 함께 비평의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시간통계 분석이라는 놀라운 방법을 가지고초인적인 시간 활용을 한 인물이 바로 류비셰프이기 때문이다그 다방면에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그런 시간통계 분석을 통해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1972년 그가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다름 아니라 그가 남겨 놓은 원고의 양 때문이었다. 70여 권의 학술서적과 단행본 100권 분량에 달하는 연구 논문이 있었다그리고 그보다 방대한 양의 학술자료와 꼼꼼하게 수제본한 수천 권의 소책자들이 있었고또 20대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작성한 일기가 있었다거기에 적힌 것들은 그 양의 방대함뿐만 아니라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담고 있었다그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류비셰프가 연구실에만 틀어박혀서 시간에 쫓기듯 살아간 것은 아니었다그는 잘 쉬었고또 충분히 잠을 잤다연구를 하다 지치면 산책에 나섰고논문을 쓰다가도 단테와 셰익스피어를 읽었다가족과 지인동료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썼으면 뜨개질도 했다그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 뿐이다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그 비밀은 그의 일기에 있었다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단 1분도 빠뜨리지 않고 기록했다.

 

그의 일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기와는 조금 달랐다하루에 있었던 중요한 일을 기록하고감상을 적는 식이 아니었다어느 하루를 보면 이런 식이었다.

 

1964년 4월 7울리야노프스크.

・ 곤충분류학알 수 없는 곤충 그림을 두 점 그림. 3시간 15

・ 어떤 곤충인지 조사함 20분 (1.0)

・ 추가 업무슬라바에게 편지 2시간 45분 (0.5)

・ 사교 업무식물보호단체 회의 2시간 25.

・ 휴식이고르에게 편지 -10.

・ 울리야노프스카야 프라우다 誌 - 10.

・ 톨스토이의 세포스토폴 이야기》 - 1시간 25.

기본 업무 6시간 20.

 

모든 날짜의 일기가 이런 식이었단다그는 자신의 일을 모두 분 단위로 기억하고 기록했던 것이다그렇게 해서 한 달의 것을 정리하고 일 년의 것을 정리했다그러니까 그는 시간을 물질처럼 사용했고그렇게 함으로써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했던 것이다.

 

류비셰브그는 천재가 아니었다하지만 용감했다시간에 맞섰고그럼으로써 시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다닐 A. 그라닌이 이 책을 쓰고 발표한 것은 1970년대라고 한다이 책을 국내에 출판하게 된 과정을 출판사 황소자리 대표는 <교수신문>에서 밝힌 바 있다1990년대 러시아어에서 중국어로 번역된 책을 다시 한국어로 중역된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라는 책을 읽었는데류비셰프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2003년 지인을 통해 저자인 다닐 A. 그라닌과 접촉할 수 있었는데, 1919년생인 그가 아직도 활동 중이었고출판을 위해 5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는 계약서를 내밀었다고 한다그런데 그는 아예 한국어 판권을 출판사에 양도한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그럼 나는 어떻게 이 책을 알게 되었나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겠다이 책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동아사이언스>의 과학자의 서재라는 연재를 통해서였다이정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의료정보연구실 선임연구원에 대한 인터뷰(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40922)에서 나를 바꾼 책으로 이 책을 소개했다이 책을 읽고 자신의 습관을 바꿀 수 있었다고 했다나도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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