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맥어스킬, 《냉정한 이타주의자》
우리나라 어느 곳에 자연재해가 나서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하면 여러 단체들이 나서서 성금을 모금한다. 성금을 내고 자원봉사를 하는 이들은 당연히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가장 효율적인 것일까? 이타주의에 효율성이라는 기준을 제시하는 게 어울리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면 일단은 윌리엄 맥어스킬의 《냉정한 이타주의자》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윌리엄 맥어스킬은 기부를 하더라도 가장 효율적으로 기부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한 사람을 살리는 데 필요한 비용이 얼마인지, 동일한 비용으로 가져올 수 있는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등을 따지는 것이다. 거의 비슷하지도 않은 분야아 단체 사이에 비교가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 들지 모르지만, 윌리엄 맥어스킬은 이를 비교할 수 있는 경제적 수단이 있음을 보여주고, 또 실제로 그것을 계산한다.
물론 그런 계산 결과만을 가지고 기부 행위를 하고, 자원봉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가까운 사람이 그 기관에서 일하거나, 혹은 이미 관련을 갖고 있거나, 아니면 어떤 기회를 통해 그 일에 가치를 느꼈다거나 하는 경우에 기부와 같은 자선 활동에 참여하는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윌리엄 맥어스킬은 해당 단체가 얼마나 잘 운용되고 있는지 감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가진 자산이 한정되어 있다면 그것이 효율적으로 쓰일 곳을 찾고, 또 쓰이도록 한다면 잘 쓰이는지 감시해야 하는 것은 의무와도 같다는 것이다.
이는 직업 선택과도 관련이 있다. 물론 여기의 논의를 보면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상당히 다르다. 일단 이타적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고 남을 도울 수 있는 직업을 찾고자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우리의 상황은 일단 직업부터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청년들에게 열정을 따르지 말고 적성을 중시하라는 조언은 너무나도 멀고도 먼 얘기다. 하지만 그래도 그런 미래를 꿈꾸는 청년들이라면 충분히 귀담아 들어야 할 조언이다.
효율적 이타주의자. 이제 충분히 납득이 가는 조어(助語)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일단 이타주의자가 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은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