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본드, 《길 잃은 사피엔스를 위한 뇌과학》
몇 가지 질문을 해본다.
우리의 길 찾기 능력을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낯선 장소에 갔을 때 우리는 어떻게 길을 찾는 것일까? 혹은 왜 길을 잃을까?
어린 시절의 탐험 본능은 선천적인 것일까? 그런 탐험 본능은 나이 들면서 감소하는 것일까?
길 찾기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언뜻 비슷비슷한 질문들 같지만,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그 근거를 찾아 와야 한다. 당연히 뇌과학, 신경과학이 필요할 것이고, 심리학도 필요하다. 행동과학도 필요하고, 인류학도 필요하다. 그리고 현대인에게 길 찾기에 있어 필수적인 GPS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리학도 필요할 듯하다. 인간에게 길 찾기라는 게 어쩌면 단순해보이고, 더불어 매우 흥미롭고 매혹적인 주제이지만 다루기에는 적지 않게 까다로운 주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쉽지 않은 주제를 마이클 본드는 능숙하게 다루고 있다. 많은 것을 읽고,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여 길 찾기에 관한 종합 탐구서를 완성했다.
우선 인류에게, 아니 모든 동물에게 길을 찾는다는 것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금방 생각해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인데, 식량을 찾기 위해서, 적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다른 부족,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길 찾기는 어쩔 수 없이 갖추어야 하는 생존 조건이다. 그리고 전 지구에 퍼져 나간 인류의 발걸음을 생각해보면 인류야말로 길 찾기의 명수였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길 찾기의 명수가 되기 위해서는 기억력도 필요하고, 상상력도 필요하고,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도 필요했을 것이다. 인류가 생존하고 진화해 온 과정이 길 찾기의 능력과 매운 연관성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이 책을 ‘종합 탐구서’라고 했지만, 굳이 분류하라면 과학교양도서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책에서 가장 긴 장(chapter)이 3장 <길을 걸을 때 우리 뇌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우리가 위치를 파악하고, 길을 찾을 때 우리 뇌에서 벌어지는 일들, 즉 뇌세포(위치 세포, 머리방향 세포, 격자 세포, 경계 세포 등)의 활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러한 연구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 세포들을 발견한 존 오키프와 모세르 부부에게 2014년 노벨생리의학상이 주어졌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 난해한 질문에 조금씩 답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과학의 발달도 인상 깊지만 그보다 더 인상 깊은 내용들은 많다. 먼저 길 잃기와 우울증 사이의 관련성이 그렇다. 의사 결정의 왜곡이라든가 소외감, 죽음에 대한 생각 등이 그런 것인데, 길 잃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반응들은 뇌 질환을 겪는 사람들에게서 거의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 길을 찾는다는 게 환경과의 소통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이 있으며 어떤 형식으로든 단절이 되었을 때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인류의 길 찾기 능력은 감소하고 있다. 바로 GPS라는 매우 강력하고도 편리한 도구 때문이다. 우리는 네비게이션을 따라서 이동한다. 네비게이션은 경로만을 알려줄 뿐, 그 경로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함구한다. 또한 그 길에 무엇이 있는지 관심을 갖지 않도록 한다. 너무나도 편리한 이 도구는 우리 삶에 필수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며, 또한 안심하고 장소를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공간 감각은 감소하기 시작했다. 길 찾기 능력의 저하되고, 이로 인해 사회적 활동의 폭도 감소했다. 길을 찾고, 혹은 잃어버리는 과정 속에서 얻게 되는 풍요로운 사색도 사라져버렸다고 마이클 본드는 지적하고 있다. 익숙치 않은 장소를 갈 때 네비게이션을 켜지 않는 건 두렵지만, 마이클 본드가 조언하듯 가끔은 갈 때는 켜더라도 돌아올 때는 꺼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