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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Nov 21. 2020

죽음의 집에서 치유의 집으로, 조지프 리스터

린지 피츠해리스, 《수술의 탄생》


지금도 병원에서 병(病)을 얻어 온다는 말을 종종 하지만(그래서 소송이 걸리곤 한다), 과거엔(사실 그리 오랜 과거도 아니다) 병원은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죽기 위해 가는 곳이란 인상이 깊었다. 오랫동안 유럽에서 병원에 가는 것은 가난한 사람뿐이었다. 돈이 있는 사람은 의사를 집으로 불렀다. 


수술은 더욱 그랬다. 마취제가 개발되고 쓰이기 전의 수술은 고통스러웠다. 외과의들의 실력은 얼마나 고통 없이 잘 치료하느냐보다 얼마나 빨리 수술을 마치느냐로 가늠되었다. 그러다 1840년대 즈음 클로로포름 등 마취제가 나오면서 수술은 고통이 덜한 상태에서(고통이 없을 수는 없으므로) 이뤄질 수 있는 것으로 바뀔 수가 있었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 수술을 받고도 죽는 사람은 여전히 많았다. 수술을 받고 난 후 고름이 차오르고, 열이 나면서 며칠 만에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당시의 지식으로는 이유를 몰랐다. 이유를 몰랐으므로 생(生)과 사(死)를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등장한 인물이 빈 병원의 이그나즈 제멜바이스였다(그 이전의 인물들, 알렉산드 고든, 웬델 홈스 같은 이들도 있지만). 파스퇴르와 코흐에 의해 세균설(혹은 배종설)이 나오기 전에 산부인과 병실 사이의 사망률에 대한 세심한 관찰을 통해 병실로 들어가기 전 손씻기를 주장했다(그래서 제멜바이스는 “감염관리의 아버지(Father of infection control)이라고도 불린다). 그 조치는 사망률 급감으로 나타났지만, 그의 주장은 다른 의사들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대신 정신병자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래서 (린지 피츠해리스가 쓰고 있듯이) “제멜바이스의 방법과 이론은 의학계에서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188쪽)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수술에서 감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확산시킨 사람은 누구였을까? 바로 조지프 리스터였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현미경을 의학 연구에 활용했고, 파스퇴르의 세균 이론을 듣고는 이를 수술 기법에 접목하여 석탄산을 이용하여 소독법을 확립했다. 간단한 과정은 아니었지만, 그의 소독법은 전 세계의 외과의들이 받아들이게 되었고, 병원이 ‘죽음의 집이 아니라 치유의 집’이 될 수가 있었다. 


그는 그 이전부터, 그리고 그 이후는 더욱더 최고의 외과의로서 칭송을 받았지만, 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던 제멜바이스에 비해서 덜 알려진 것도 사실이다(우리가 어떤 것을 기억하느냐는 사실 좀 편의적이긴 하다). 하지만 그의 명성을 알 수 있는 예가 있다. 지금도 어느 편의점이나 약국이나 선반을 차지하고 있는 구강청결제 ‘리스테린(listerin)’이 그것이다. 소독법을 확산시키고자 미국 필라델피아를 방문한 리스터의 강연을 듣고 조지프 조슈아 로런스라는 의사가 조제하고, 약제사인 조던 휘트 램버트가 상업화한 것이 지금도 가장 널리 쓰이는 구강청결제 중 하나가 바로 리스테린이다. 


리스트의 삶은 자신의 소명에 대한 충실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외과의로서 사람을 살리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생각했고, 그것을 단지 기존의 방법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에 기초해서 연구하고,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고 실제 수행하고, 또 개선함으로써 수술의 개념을 완전히 바꿀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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