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A Nov 26. 2020

명랑한 은둔자, 동의 내지는 인정

캐롤라인 냅, 《명랑한 은둔자》

‘명랑’과 ‘은둔’이라는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러나 꽤 매력적인 삶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제목을 달고 나온 《명랑한 은둔자》는 Caroline Knapp의 유고 에세이집이다. 2002년 마흔둘의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그녀가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남긴 에세이들을 모았다. 여기 실린 글에는 여성으로서의 삶과 자각, 고독한 인간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 아버지와 어머니를 연이어 잃은 상실감과 그 상실감을 껴안고, 혹은 극복하며 살아가는 방법, 친구와 개와 맺은 소중한 관계의 의미, 그리고 자신을 옭아맸던 거식증(섭식장애)과 알코올 중독에 대한 솔직한 얘기들이 지적인 문체에 실려 있다. 어쩌면 그녀가 낸 책들,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세상은 왜 날씬한 여자를 원하는가》, 《남자보다 개가 더 좋아》의 이야기들의 원본, 내지는 요약본이 담겨 있는 셈이다(난 이 책 직전에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만 읽었다). 


물론 여기에 실린 글에는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에서 볼 수 있는 집요한 자기 응시는 덜하다. 하지만 날카로운 세상 읽기가 있다. 과거의 자신에 대한 반성적 인식과 현재의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그것은 현재의 자신이 완벽하기에 그런 게 아니라 현재 자신에게 부족하고 모자란 것이 있지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비록 그것을 완벽하게 극복하지 못하더라도 그 극복의 길에 서 있을 수 있다는, 자기 자신의 성장에 관한 인식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주변을 통해서 세상으로, 즉 보편적 인식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선명하게 읽을 수 있다. 홀로 존재하는 고독감에 대해 긍정적이고, 남의 시선보다 자신의 인식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며, 떠나보낸 사람들에 대해 그리워하며... 그렇게 무척이나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점철되어 있는 것 같지만, 결국은 그 이야기들은 자신이 친구와 가족과, 사회와 분리될 수 없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Caroline Knapp은 자신의 이야기를 보편적인 이야기로 전환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비록 Caroline Knapp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 세상에 대한 인식에 대해 모두 동의할 수는 없지만(그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런 인식으로 나아가는 모습만큼은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그녀의 삶의 자세를 인정하게 된다. 동의하고 찬성할 수는 없어도 인정할 수는 있게 만드는 글, 그게 Caroline Knapp이 쓴 글이다. 




작가의 이전글 결핍과 갈망, 헤어짐 - 술에 관한 러브 스토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