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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Nov 25. 2020

결핍과 갈망, 헤어짐 - 술에 관한 러브 스토리

캐롤라인 냅,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나는 사랑에 빠졌지만, 그 사랑이 내가 아끼던 모든 것을 망쳐버린 탓에 결국 헤어졌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러브 스토리다(사실 원제도 “Drinking: A Love Story”다). 바로 술, 알코올에 관한. 

러브 스토리는 사랑하는 얘기만이 아니다. 유혹하고, 빠져들고, 갈등하고, 후회하고, 헤어지고... 그 모두가 러브 스토리를 구성한다. 거기에는 열정이 있고, 쾌락이 있으며, 욕망이 있고, 두려움이 있다. 여기에는 그 모두가 있다. 


캐롤라인 냅은 자신이 술과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나 결국에 헤어진 얘기를 하고 있다. 가족에 대한 얘기, 남자들과의 관계에 대한 얘기 등 사생활이 너무나 솔직하게 담겨 있다(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가족과 남자들, 동료들과의 관계가 결국은 술과 관련 맺을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술에 집착하는 행위는 결국 결핍에 대한 반응이다. 결핍 때문에 술을 마시고, 술을 마셔 더욱 결핍과 외로움을 느끼고, 그래서 더 술을 마신다. 이 순환에 접어들면 우리는, 그걸 알코올 중독이라고 한다. 불행하기에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마셔 불행해지는 것이다. 


캐롤라인 냅은 20년 간 술을 마셨지만, 그녀는 이른바 ‘고도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였다. 고도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는 직장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일을 한다(그녀가 쓴 칼럼들은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가족 부양에 문제가 없으며,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는다. 오랜 시간 동안 술을 함께 하며 삶의 많은 영역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낸다. 그래서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임을 인정하기 쉽지 않으며, 알코올 중독자라고 인정하더라도 마음만 먹으며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술은 그렇게 쉽게 중독자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알코올 중독은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것이기도 하다. - “채워라, 채워라. 너의 빈자리를 채워라. 외로움과 두려움과 분노의 구덩이를 메워 당장 눈 앞에서 사라지게 하라.” 술은 외로움과 결핍, 두려움에 대한 가장 손쉬운 해결책이다. 그 해결책은 너무나 가까이 있으며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녀는 술에 빠졌던 자신을 해부 대상으로 삼아 심리학적으로 낱낱이 해부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매혹적인 문장으로 쓰고 있다. 그녀가 술에 빠졌다 거기서 벗어난 과정보다 술과 맺은 관계에서 나오는 심리적 통찰과 그것을 묘사하고 서술하는 매혹적인 문장이야말로 이 책의 매력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자신과 인간관계의 황폐화와 같은 알코올 중독의 폐해를 고발하기도 하는 이 책을 읽으며 술 생각이 났다. 맥주 한 모금을 머금고 책을 읽는 모습을 여러 차례 상상했다. 물론 나는 인내심을 발휘하여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았다. 캐롤라인 냅의 매혹적인 문장은 술을 불렀지만, 그 문장이 다음과 같은 것이라 겨우 참을 수 있었다. “술은 거짓된 미혹이다. 알코올은 힘을 주지만, 준 만큼 그대로 앗아간다.” (138쪽)


물론 우리는, 아니 나는 술 없는 세상을 상상하긴 싫다. 그러나 술에 빠져 허우적대며 사는 세상도 아름답지 않다. 물론 캐롤라인 냅은 술과 절연을 선언하고, 적어도 이 책을 쓸 당시까지는 술을 다시 입에 대지 않았지만, 나는 술의 유혹(혹은 미혹)은 여전하고, 그 유혹에 흔들리고, 굴복하고, 혹은 거부하고, 겨우 빠져나오며 살고 있다. 그럭저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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