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발다치, 《폴른: 저주받은 자들의 도시》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에이머스 데커는 동료 요원 재미슨의 언니가 살고 있는 배런빌이라는 작은 도시로 휴가를 간다. 배런빌은 한때는 배런 1세에 의해 광산업 등으로 번성했으나(그래서 도시의 이름도 그 배런의 이름을 따서 배린빌이다) 지금은 쇠락할 대로 쇠락해서 마약으로 찌든 도시가 되어버렸다. 이른바 ‘러스트벨트’의 전형적인 지역이다(우리는 미국 대선 뉴스를 통해 이 용어가 매우 익숙해졌다). 데커는 그곳에 도착하 얼마 지나지도 않아 기묘한 살인 사건을 목격하고 만다. 신원도 분명하게 알 수 없고, 사망 시간도 정확하게 추산할 수 없는 시체 두 구를 빈 집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배런빌에서는 이미 2주 동안 기묘한 살인 사건으로 4명이나 살해당한 상황이었다. 당연히 데커는 이 사건을 해결하고자 나선다.
전에도 느낀 것이지만 데이비드 발다치의 소설에서는 작은 사건처럼 보이는 사건이 점점 그 스케일이 커져간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괴물이라 불린 남자》, 《죽음을 선택한 남자》에서 모두 그랬으며, 여기서도 우연히 맞닥뜨린 소도시의 살인 사건이, 거대한 네트워크의 한 부분이라는 게 드러난다. 그것을 풀기 위해서는 작은 단서들을 겨우겨우 찾아 직소퍼즐처럼 짜 맞추어야 하고, 데커와 동료는 죽음의 위험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소설이니 만큼 당연히 사건은 해결되겠지만, 소설의 흥미진진함은 이 이야기의 퍼즐이 어떻게 정교하게 맞춰지고, 그리고 기대에 어긋나면서, 그래서 기대에 부응하면서 전개되느냐이다. 이 소설은 그 한 장면을 읽고 나면 다음 장면에선 어떻게 연결될까 궁금하게 만든다. 데커가 사건의 결론에 이르는 길은 매우 복잡하지만, 그것을 읽는 독자는 단숨에 거기까지 다다르고 싶게 한다.
이 소설이 발다치의 이전의 데커 시리즈와 좀 다른 점이 있다면, 데커의 사건 해결에서 그의 기억력이 별달리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건 해결 도중 부상으로 기억력에 약간의 문제가 생길 조짐을 보이기도 하지만(사실은 그게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기억력보다는 지력(知力)과 끈기가 이 사건을 해결하는 원동력이 된다. 초능력자라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이기에 사건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그리고 시리즈를 통해 아주 조금씩이나마 상승해온 데커의 공감 능력이 여기서는 거의 정상에 가까워졌다. 그게 한 꼬마 숙녀 때문이라는 것은 공식과 같은 것이지만 데커를 괴물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여주고 싶은 작가의 의도로 보이고, 그래서 다음 작품을 더 기대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