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의 죽음의 천사’, 멩겔레를 추적하다
요제프 멩겔레, ‘아우슈비츠의 죽음의 천사’로 불렸던 나치 의사. 인류학과 의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1943년 아우슈비츠의 의무관으로 임명된 그는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우아한 손짓으로 유대인들의 운명을 결정지었던 악마 같은 인물이었다.
“멩겔레는 유럽 암흑시대의 제후다. 이 거만한 의사는 아이들을 해부하고 고문하고 불태웠다. 좋은 가문의 아들인 그는 휘파람을 불면서 40만 명을 가스실로 보냈다. 오랫동안 그는 쉽게 추적을 피해 궁지에서 벗어날 거라 생각했다.” (163쪽)
나치 독일의 패망 이후 유럽 이곳저곳에서 이름을 숨기고 살다 1949년 결국 남미로 몸을 숨긴다. 이후 그에 대한 소문이 드문드문 떠돌았다. 어디에서 살고 있다는 소문과 더불어 죽었다는 소문이 번갈아 전해졌다. 한때 독일의 수사기관도과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가 추적해서 거의 잡을 뻔했지만 도중에 시들해졌다.
그가 완전히 세상에 드러난 것은 이미 그가 죽은 지 6년이 지난 1985년 브라질에서였다. 가짜 이름으로 매장된 시체가 발굴된 것이다. 그 진위 여부마저 설왕설래하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DNA 조사를 통해 그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는 살아서는 법으로서 심판을 받지 않고 끝까지 실종 상태로 살아남았던 것이다.
멩겔레, 그는 어떻게 남미에서 살아남았을까?
올리비에 게즈는 그 의문에 답하기 위해 3년이라는 시간을 고스란히 바쳤다고 한다. 치밀한 자료 조사와 현장 답사를 통해 멩겔레의 행적을 조각조각 모았다. 그리고 그것을 썼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그 꼬리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던 멩겔레였던 만큼 그의 행적에는 구멍이 뚫릴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올리비에 게즈가 택한 방식은 바로 ‘소설’이라는 형식이다. 그러나 비록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멩겔레의 마음을 읽고자 했지만, 그가 머물렀던 장소들과 접한 인물들에 대한 정보만큼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논픽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문헌’이 달린 소설이라니, 이 이야기는 논픽션이지만 소설이라는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기록인 셈이다.
이 소설(혹은 논픽션)에서 (잘 몰랐었고) 가장 놀란 점은 요제프 멩겔레가 자신의 신분을 완벽히 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버지와 아들을 비롯하여 유럽의 자신의 집안사람들과 서신을 주고받고 있었고, 정기적으로 자금을 지원받고 있었다. 그리고 남미에 숨어든 나치들이 남미 여러 국가의 독재 정권에 명시적으로나, 혹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형식으로 비호를 받고 있었다는 점도 놀라운 점이다. 그런 비호 아래 나치즘을 부활을 꿈꾸고 있었고, 멩겔레는 비록 쫓겨 다니며 불안에 떨긴 했지만 죽을 때까지 붙잡히지 않고, 이름을 바꿔가며 살아남았다. 전쟁이 끝난 후 바로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이나 이스라엘에서 벌어졌던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에서 볼 수 있듯이 나치에 대한 단죄가 이뤄졌다고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오랫동안(혹은 지금도) 나치즘은 존속했고, 부활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멩겔레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저지른 짓을 반성하지 않았다. 변병도 아니었고(시켜서 한 일이다?), 자신 행위의 정당성을 끝까지 믿고 강변했다(자신은 유대인들을 도우려 했다? 어차피 죽을 사람들을 죽였고, 노동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별했을 뿐이다?). 변절하거나 독일에서 잘 살아가는 옛 나치들에 대해 경멸했고, 자신의 처지에 대해 억울해했다. 소설이므로 멩겔레가 도피 중에 가졌던 마음은 작가의 창작일터이지만 소설가의 상상만은 아니라는 것은, 우리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그건 그가 바로 멩겔레이기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란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단순히 멩겔레를 추적해서 그의 행적을 보여주는 논픽션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경고로 나아가는 보편성을 지닌다. 그래서 작가는 이렇게 ‘소설’을 맺고 있다.
“2세대 혹은 3세대가 지나가고, 기억이 차츰 퇴색하고, 학살의 마지막 증언자들이 사라지면 이성이 흐려지고 인간들은 다시 악을 퍼뜨리려 나타날 것이다.
밤의 환상과 몽상들이 우리로부터 물러나 있게 해주소서.
경계하라. 인간은 외부의 영향에 쉽게 변화하는 생물이다. 인간을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