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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Jan 03. 2021

1493, 호모제노센의 세상이 열리다

찰스 만, 《1493》


호모제노센(Homogenocene). 찰스 만의 《1493》 전체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이 단어다. 지구적인 삶의 동질화, 균일화를 의미하는 단어다. 지금은 흔히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단어로는 포괄할 수 없는 질병과 생태 등의 균일화까지도 포함한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 상황이 바로 콜럼버스(찰스 만은 책에서 주로 콜론이라고 한다. 아메리카 도착 이후 스스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의 아메리카 대륙 도착 이후라는 인식 하에, 찰스 만은 이 책의 제목은 “1493”이라고 했다.

 

사실 코로나19로 각국이 빗장을 걸어 잠그거나 교류를 제한하고 있어 서로 고립된 상황 같지만, 사실 이미 우리는 전 지구적 네트워크 속에 단단히 매여 있다. 그것은 지금 당장의 교류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수백 년 전부터 급속도로 진행되어 온 사건이며, 추세다. 그건 우리의 식탁에서 절대 빼놓지 못하고, 당연히 우리의 것이라 여기는 김치를 보아도 그렇다. 우리의 김치는 거의 대체로 빨간 고추가 주재료이지만, 그 고추는 한반도에서 나던 것이 아니다. 아메리카 원산인 고추는 어떤 경로이든 한반도로 전해졌고, 그게 당연히 우리의 것처럼 여겨지게 됐다. 그 밖에도 찰스 만이 정교하게 추적하고 있는 고구마와 감자 역시 그렇다.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호모제노센 세상에 살고 있었으며, 지금은 더 단단히

 

콜럼버스(혹은 콜론)가 아메리카에 발은 디딘 것은 1492년 12월 25일이었다. 그 이후 유럽과 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이에는 숨가쁜 교류가 시작되었다. 가축이 되는 동물과 씨앗은 물론, 천연두(하도 많이 얘기된 거라 이 책에선 간단히 언급된다), 말라리아, 황열병 같은 병원체, 그리고 사람(정복자든, 노예든)이 서로 옮겨지면서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그 결과는 대륙 사이의 뚜렷했던 생태계가 엇비슷해진 것이었다. 같은 질병으로 아프고, 죽어갔고, 동일한 작물을 기르고, 같은 가축을 키우며 기아에서 벗어나거나, 혹은 곤욕을 치렀다.

 

이러한 대륙 사이의 균일화는 유럽에서 아메리카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호모제노센의 세상이 열리면서부터 쌍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찰스 만은 (앞에서도 연급했지만) 감자와 고구마 같은 아메리카의 작물이 아일랜드와 중국의 명나라를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 남아메리카의 특산물이던 고무나무가 동남아시아로 전파되면서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그리고 또한 얼마나 황폐화되었는지를 꼼꼼하게 파헤치고 있다.

 

찰스 만이 특히 공을 들여서 살피고 있는 것은 인종 간의 결합이다. 그냥 단순하게 유럽인이 아메리카를 정복하면서 그곳에 살고 있던 인디언들을 거의 몰살시키고, 아프리카로부터 노예를 들여왔다는 것으로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매우 복잡한 역사가 있다는 것을 어쩌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인종 사이에도 호모제노센의 세상이 되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이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콜럼버스의 항해가 오늘날의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은 어쩌면 서구의 시각일 수 있고, 또한 지나친 과장으로도 여겨진다. 하지만 그 이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던 대륙의 역사가 통합되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 존재가 반드시 고려해야만 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점에서 본다면 찰스 만의 과장이 그렇게 과장만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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