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A Jan 12. 2021

미생물학 역사에 그들이 있었다!

폴 드 크루이프, 《미생물 사냥꾼》

1926년에 출판된 전설 같은 미생물학 연구자들의 이야기들을 다룬 전설 같은 책. 폴 드 크루이프의 《미생물 사냥꾼》에 대한 인상을 간단히 얘기하자면 이렇다. 그러니까 선구적인 작업, 지금보다는 당대에 가까운(당시에 살아있는 연구자도 있었으니까) 연구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는 의미도 있고, 하지만 그 후의 눈부시고 미생물학의 역사, 뛰어난 미생물학자의 이야기는 없다는 한계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미생물학의 역사를 어느 정도나 자세히 다룰 것인가에 따라 넣을 수도 있고, 뺄 수도 있고, 자세히 다룰 수도 있고, 간단히 이름만 언급하듯 다룰 수도 있지만, 누구라도 넣어야 하는 인물들이 있다. 레벤후크(레이우엔후크라고 해야 더 옳다), 파스퇴르, 코흐, 에를리히 같은 인물들이다. 미생물학의 역사에서 확실한 전환점을 이룬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에밀 베링, 메치니코프와 같은 월터 리드 같은 인물들도 대중적인 연구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테오발드 스미스, 데이비드 브루스, 로널드 로스, 바티스타 그라시 같은 연구자들은, 지금은 대중들에게는 거의 오르내리지 않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나 기억하는 연구자들이다.


그런데 이 《미생물 사냥꾼》을 통해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바로 그런, 지금은 거의 잊혀진 미생물 연구자들을 만나는 것이다. 파스퇴르나 코흐에 대해서는 수준이 다양한 많은 책들이 있고, 메치니코프에 관한 평전도 나와 있고(《메치니코프와 면역》), 월터 리드와 같은 경우엔 그의 이름을 딴 병원이 미국 최고의 군 병원이 되었다(이 책을 쓸 당시에는 아직 그런 병원이 세워지기 전이었지만). 그래서 그들에 대해 찬사를 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다. 하지만 미생물학의 역사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자국이 옅어지고 있는 연구자들이 있다. 그렇게 잊혀져가는 연구자들이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그런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 또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등등에 대해서 여기서만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없다고 본다. (거기에 덧붙여 나 자신이 역사에 이름을 남길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미생물학자라는 점도, 그런 인물들(물론 그들과 나의 차이는 너무 크지만)에 애정을 가지게 되는 이유라 할 수 있다.)


사실 폴 드 크루이프는 이 인물들의 업적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연구라는 게 천재만이 하는 일도 아니고, 또 고상한 인격의 소유만이 하는 일도 아니다. 물론 여기의 연구자들이 평범한 재능의 소유자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게 특출난 연구 업적을 낸 이들이 인간적인 면모를 들여다보는 것은 적잖이 위로가 되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은 현대의 관점에 봤을 때 매우 불완전한 미생물학 지식을 전달해준다. 아직 바이러스의 정체도 모르는 시절이었으며(그러니 코흐의 공수병이나 월터 리드의 황열병도 그 정체가 분명하지 않았다), 파울 에를리히가 ‘마법의 탄환’을 발견했다고 환호성을 올렸지만, 이 책이 나오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알렉산더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했다는 것도 실릴 수가 없다. 아직 면역학이 미생물학과 분리가 되지 않은 시점이라 메치니코프가 ‘미생물 사냥꾼’의 목록에 들어가 있고, 체액성 면역과 세포성 면역이 서로 보완적인 관계라는 것도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었다(그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 수 없었던 노벨상 위원회는 메치니코프와 에를리히에게 공동으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여했다). 코흐를 절망에 빠뜨렸던 결핵약이 이후 투베르쿨린이라는 결핵검사에 쓰이게 되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는 알 수 없다(역자 후기를 통해서는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미생물학의 ‘지금’을 알고자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미생물 사냥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길을 따라가려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이 없었더라도 어쨌든 세균이 병을 일으키는 것도 알 수 있었을 것이고, 그 세균을 제어하는 방법도 어떻게는 찾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미생물 사냥꾼이 그때 밤을 세워가며, 모든 것을 던져가며(생명까지도) 알아낸 것들이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일찍 우리는 안전해졌다. 그 결과가 바로 나, 우리일 수 있다. 그들에게 찬사를 보내야 하는 이유다.

작가의 이전글 믿습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