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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Jan 10. 2021

믿습니까?

오후, 《믿습니까? 믿습니다!》

제목을 보자마자 생각난 장면. 어릴 적, 일요일 아침마다 TV에서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중계했다. 종교방송도 아니고, 이른바 공중파 채널(그런 표현도 없었다)이 2개 밖에 없던 시절이었는데 그런 방송이 가능했다는 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의아하긴 하지만(신자도 아니었는데 그 방송을 보게 된 것은 선택할 수 없어서 그랬을 거다), 설교가 끝나고 교회에서 나오는 인파를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인파와 함께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조용기 목사의 설교 도중에 “믿쉽니까?”하고 내뱉는 말이었다. 아마 흉내도 내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이 책도 거기서 온 게 아닐까 생각도 한다(물론 신자들은 “믿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아멘”이라고 했지만). 

 


믿음이라는 건 종교에 관한 얘기만이 아니다. 비록 나는 지금 종교가 없지만, 믿음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옷을 입거나, 길을 걸을 때 가지고 있는 징크스도 일종의 믿음이며, 내가 가지고 있는 사상(과연 그런 게 있다면)도 또 다른 믿음의 형태일 수 있다. 민족주의 또는 내셔널리즘이 그리 탐탁치 않게 생각은 하지만, 국가대표 축구 경기만 열리면 간절히 우리나라 팀이 이기길 응원한다. 온 나라의 사람들이 두 손 모아 비는 데 그게 종교가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다. 인류는 스스로 인간이라는 자각을 하기 전부터 무언가를 믿어왔다. 그 증거는 차고도 넘치고, 어딜 가나 이성적으로 본다면 어처구니 없는 신앙을 모시고 있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본다. 그걸 보면 내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건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그렇게 무언가를 믿는 게 당연하다면 아무 거나 믿어도 다 인정해줘야 하는 걸까? 내 아내가 아주 가끔 점을 보러 가는데 그걸 믿지는 않지만 인정해주는 것과 이른바 사이비 종교라 불리는 것에 빠져 가정을 내팽채치는 것은 어떻게 다른 것이라 용납못한다고 할까? 그 기준은 무엇일까? 그 사이비 종교라고 불리는 것도 믿는 사람의 자유가 있는 것이고, 그렇게 믿음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또는 내가 붉은 악마가 되어 축구 대표팀을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것이랑, 국가, 민족 우선주의를 내세운 히틀러 같은 인물을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것이랑 또 어떤 것이 다른 것일까? 하나는 다른 이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 다른 하나는 해를 입혀서 다른 것일까? 가령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지만 않았다면 괜찮았던 것일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참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오후 작가는 여전하다. 마약에 대해서 쓸 때도, 과학에 대해 쓸 때도 말투는 유머러스하지만, 내용은 매우 진지했다. 여기서도 그렇다. 여기저기서 푸흡하고 웃음이 새어나오지만 내용까지도 우스개는 아니다. FSM, 그러니까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교(Flying Spaghetti Monster)’에 대해서 진지한 듯 쓰고 있는 것은 다분히 기존의 종교를 비꼬기 위한 것이지만, 그것을 넘어서서도 종교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한다(주로는 ‘디스’하지만). 서양과 동양의 역사를 통해 미신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비교하고 있고, 정치와 사상에서의 믿음, 나아가 종교, 내지는 미신과 같은 면모를 폭로하고, 미국을 호구의 나라라고 강도 높게 비아냥거린다(물론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그렇다고 그 나라가 하나도 신경 쓰지 않을 걸 알기 때문이다). 

 


좌충우돌 같지만, 믿음의 범위를 넓히고, 그 자락에 모든 것이 걸리도록 한 후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들을 털어놓고 있다. 그런데 묘한 것이 그 자락에 쓸리며 나의 공고한 믿음들이 결국은 체계도 잡히지 않은 어줍잖은 믿음과 별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닫게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똥고집이라고 해야 할까?

 

재미있게 읽었고, 또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기다려지고 궁금하다. 오후 작가가 다음에는 무엇을 건드리게 될지. 분명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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