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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Jan 22. 2021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거나 서늘한 책읽기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판사 문유석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으며 드는 느낌은 서늘함이다. 의외다. 그의 말은 대체로 온건하고, 또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는 게 분명한데 마음은 서늘하다. 그의 생각과 그 생각으로 나온 글에 동의하기도 하고, 또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런데 동의하는 부분이나 그렇지 않은 부분이나 모두 그 느낌은 서늘함이다. 그 서늘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것은 내가 놓친 것들이 많다는 얘기다. 그가 옹호하는 개인이라는 가치에 대해서 인식은 하지만, 행동은 그리 하지 못했던 것이 많았다. 개인에게 집단으로서(아무리 작은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강요하였던 적이 없지 않았다. 그의 그런 개인주의에 대한 옹호는 마음을 서늘하게 했다.

 

아무래도 그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을 읽을 때도 서늘하다. 그래도... 하는 생각들. 그런 생각들도 나름대로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들이 어쩌면 논란의 한복판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그게 아니라 완전히 사회에서 무시받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서늘하다.

 

그렇다. 좋은 글을 읽는 느낌은 그런 서늘함이 있어야할 것 같다. 서늘함의 정체는, 말하자면 글이 내 의식 속에 들어와 어떤 작용을 하고 있다는 느낌인 것이다. 그 글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내용 둘만 언급한다. 하나는 행복에 대한 것이다. 서은국 교수의 글을 빌어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하고 있다(<행복도 과학이다>). 다양한 인간 관계 속에서 자주 느끼는 만족감이 행복하다고 여길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오랜 동안의 피 튀기는 경쟁 끝에 승리가 주는 행복감? 그건 행복의 대차대조표로 따지자면 손해라는 얘기.

 

또 하나는, 그가 우리 사회가 롤 모델로 삼아야 하는 국가로 미국을 드는 부분이다. 2015년의 나온 글이니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에볼라에 대한 미국 보건당국과 법원, 사회가 보여준 건강함은 코로나-19로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제는 퇴장한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의 행태는 미국이 이미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문유석은 책에서 미국의 자신감을 상찬하고 있고, 그래서 다양성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하고 있지만). 지금 어떻게 볼지 궁금해지고, 또 그렇다면 우리의 롤 모델은 또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궁금하다. 내내 서늘한 마음을 읽었고, 이 부분에서도 서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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