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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Jan 24. 2021

"깊게 파려면 넓게 파라"

데이비드 엡스타인,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빌 게이츠가 추천하기도 했지만(http://blog.yes24.com/document/13516368), 사실 그가 추천했다는 기사를 보기 전부터 내 목록에 올려놓았던 책이다. 누가 맨 처음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최재천 교수에게서 들은 것으로 기억하는 “깊게 파려면 넓게 파라.”는 말을 아주 인상 깊게 받아들이고, 또 무척이나 옳은 말이라 여기는 입장에서 이 책은 필독서였다(《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를 읽으며 “가장 스페셜한 제너럴리스트”라고 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http://blog.yes24.com/document/9721520).

 

데이비드 엡스타인은 두 가지 모델을 제시한다. 타이거 우즈와 로제 페더러. 한 사람은 오로지 골프에만 매진하는 조기 교육을 통해 세계 정상에 올랐고, 또 한 사람은 다양한 경험 끝에 테니스 선수로 오랫동안 세계 랭킹 1위를 지켰다.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로 성공한 사례이지만, 우리 사회는 대체로 타이거 우즈의 사례에 더 집중한다. 어렸을 때부터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갈고 닦아서 정상에 오르는 모델이다. 그래서 조기 교육의 열풍이 불었고, ‘1만 시간의 법칙’이 유행했다(말콤 글래드웰의 책이 한 몫을 했고, 솔직히 나도 그 책을 읽고 적지 않게 공감했었다).

 

그런데 데이비드 엡스타인은 세상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하고 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늦깎이로서 성공한 사례가 더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골프나 체스와 같은 협소하고 친절한 세계에서나 조기 교육이 절대적일 뿐이다. 우리의 대부분의 세계는 ‘사악한’ 세계이며, 그 사악한 세계에서는 협소한 전문 지식만 가지고서는 대처할 수 없다. 반복을 통해서 한 가지 일에 익숙해지는 것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나으며, 빠르게 학습하고 평가받는 것보다, 느리게 어렵게 공부하는 것이 오래 남으며 효과도 좋다. 경험 내에서 판단하는 것보다, 경험 밖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오는 것이, 외부인이 참여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늘 최신의 기술을 결합시키는 것보다 ‘시든 기술’을 활용하는 수평적 사고가 효과적일 수도 있으며, 전문가라는 사람(‘고슴도치’)의 예측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일반인들(‘여우’)의 예측보다 못하다. 친숙한 도구나 절차를 유지하고 고집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으며, 의도적인 아마추어가 획기적인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

 

데이비드 엡스타인은 이러한 예를 다양한 분야에서 찾고 있다. 과학, 기업, 군대, NASA, 일본의 닌텐도, 미래 예측 분야, 미술 등등. 사실 우리말 제목에 ‘늦깎이 천재’라고 써서 그렇지, 그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원제가 더 잘 표현하고 있다. ‘Range’. 달리 번역하지 않고, 그냥 ‘레인지’라고 쓰고 있는 이 말은 그냥 ‘범위’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다양성을 의미할 수 있으며, 그 다양성은 개인의 경험과 교육의 다양성, 어떤 집단 구성원의 다양성, 접근 방법의 다양성 등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 레인지를 갖추고 있는 이들이 성공, 혹은 행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는 결론적으로 ‘뒤처진다고 느끼지 마라.’라고 하고 있다. 일찍 시작하고, 더 앞서 나가는 사람과 비교하는 게 아니라, 오늘의 자신과 어제의 자신과 비교하라고 한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을 수도 있지만, 뒤처졌다는 느낌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방황하는 현재가 결국엔 미래에 큰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강조한다.

 

그러나 전문성 자체를 폄하할 수는 없다. ‘넓게 판다’는 것도 사실은 ‘깊게 파기’ 위해서다. 일찍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도, 끊임없이 자신의 레인지를 넓히려고 하고, 또 자신의 경험을 극복하려 하고, 또 외부로부터 새로운 시각을 끌어들이려한다면, ‘제너럴한 스페셜리스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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