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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Feb 13. 2021

만리장성에서 사이버장벽까지, 인류가 벽을 세워온 역사

함규진, 《벽이 만든 세계사》


데이비드 프라이는 《장벽의 문명사》에서 인류 역사 내내 반복되었던 장벽의 건설과 파괴에 대해서 썼다. 과거에는 장벽이 문명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으며, 평화를 상징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상징이 사라진 지금도 스스로는 납득할 수 있는 이유로 장벽을 쌓고 있고, 또 그 장벽은 역사의 법칙처럼 언젠가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장벽의 문명사》에선 진짜 ‘장벽’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함규진은 그 ‘벽’의 범위를 넓힌다. 1부에서는 일단 역사 속에서 유명한 장벽들, 즉 벽 건너의 야만인을 막기 위한 장벽이었던 만리장성과 하드리아누스 장벽, 도시(콘스탄티노플)를 방어하기 위한 정교한 벽이었던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이야기하지만, 2부부터는 그 벽의 범위가 넓어진다. 개인적인 사냥을 위해 들여온 토끼를 막기 위해 설치한 오스트레일리아의 토끼 장벽(울타리, fence)은 인간의 어처구니없음을 보여주고 있고, 19세기 파리 코뮌에 등장한 바리케이드는 그 모순성과 파국에도 불구하고 민중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존엄성을 보여준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침공을 막아주지 못했던 프랑스의 마지노선은, 실패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지만, 정작은 상당히 의미가 있었을 수도 있는 시도였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런 장벽 자체가 아니라는 것까지도. 이어지는 게토 장벽과 베를린 장벽, 팔레스타인 장벽은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도 않은 아픈 역사다. 특히 장벽에 갇혔던 유대인이 나치와 같은 방식으로 팔레스타인인을 장벽 속에 가두게 되는 역사는 아이러니함을 넘어선다. 그리고 한반도의 군사분계선... 이 군사분계선이 생기게 된 역사와 그 이후 그 선을 두고 벌어진 갈등과 오욕의 역사들, 그리고 그 선을 넘어가고 넘어온 이들에 대해 쓰고 있다. 그 철조망을 걷어내야 할 권리와 의무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더욱 무겁고 차갑게 느껴진다.


끝으로 쓰고 있는 장벽은 바로 난민 장벽과 사이버 장벽이다. 서사하라의 모로코와 폴리사리오 지역을 가르는 모래 장벽, 중앙아시아의 국경 곳곳에 세워지고 있는 장벽들,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세워진 카슈미르 장벽,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 사이에 세워진 장벽, 짐바브웨로부터의 난민을 막기 위한 보츠와나 전기 철조망 장벽, 중동과 아프리카의 난민을 막기 위한 터키, 헝가리, 그리스, 심지어 ‘자유의 나라’ 프랑스 등에 세워진 장벽들. 세계 곳곳에서 우후죽순 격으로 세워지고 있는 난민 장벽은 그 벽 안의 사람들에게는 당연해 보일지 모르지만, 여러 곳에서 불리우 듯 ‘수치의 장벽’이기도 하다. 인간의 편협성을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인간은 끊임없이 벽을 만들어왔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는 ‘벽’을 세우고 부숴온 기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역사는 대체로 수치의 역사였고, 실패의 역사였다. 앞으로도 인간은 온갖 종류의 벽을 세울 것이다. 그리고 또 그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역사가 기록될 것이다.


“인간은 ‘너’와 ‘나’를 구분하기 위해 장벽을 쌓았고, 장벽으로 ‘나’를 ‘너’에게서 지키려 했다. 그러나 이는 ‘우리’를 형성하는 데 때로는 성공했고, 때로는 실패했다. 테오도시우스 장벽은 황제에서 어린아이에 이르는 모든 장벽 안쪽의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도록 했다. 코뮌 전사들의 장벽은 ‘우리가 왜 너와 나로 나뉘어 이렇게 잔혹하게 싸워야 하는가?’라는 숙제를 모든 정치 세력과 계급들에게 남겼다. 게토 장벽에서 유대인들을 가둔 독일인들이 베를린 장벽에 갇히고, 게토 장벽에서 풀려난 유대인들이 서안 지구 분리 장벽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을 가둔, 돌고 도는 장벽의 역사는 ‘우리’를 한사코 ‘너’와 ‘나’로 나누려 한 인간의 어리석음과 비극을 보여준다.” (300~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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