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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Mar 13. 2021

과학은 어떻게 인간의 지각 범위를 넓혀왔는가

지야 통, 《리얼리티 버블》

인간은 자신의 지각 범위를 넘어서서 파악할 수 있게 된 (적어도 지구에서는) 최초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입 속에 눈으로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득실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맨 눈으로는 그저 반짝이는 점으로 보이는 것들이 우주라는 광대한 존재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우리를 구성하는 것이 우주의 빅뱅에서 탄생한 원소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제는 지구상의 다른 동물들이 지각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때로는, 아니 대부분 더 나은 지각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실 그것은 오랫동안 인간의 맹점들이었다. 인간이라는 종이 진화한 이후 아주 최근까지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무엇인가 존재한다고 여겨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바로 인간만이 구축한 과학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인간은 보고 듣고, 지각하는 범위를 넓혀왔고, 깊게 만들어왔고, 그래서 맹점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정도까지는.


하지만 과학을 통해 많은 것을 극복하게 된 인간은 여전히 바로 그것으로 인한 맹점을 지니고 있다. 지구상의 많은 생물들이 바로 인간으로 인해 대량멸종의 재앙으로 접어들고 있으며, 에너지 고갈의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또한 어마어마한 쓰레기를 배출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게 어느 정도인지 헤아리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인간이 만든 체계를 통제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은 잘 인식하지 못한다. 바로 맹점이며, ‘현실 거품(reality bubble)’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맹점은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도 존재한다. 시계라는 것이 발명되면서 우리는 시간의 노예가 되었으며(“시간이 본인의 것이 아닐 때 인간은 품위를 잃는다.”), 공간이 소유권에 속하게 되면서 스스로 그 인위적인 공간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시간과 공간에 예속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평소에 인식하지 못한다. 또한 현대의 기술의 의한 감시체계는 우리의 자유를 앗아가지만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뿐이다. 우리의 치명적인 맹점인 셈이다.


지야 통은 바로 그런 인간의 맹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인간의 여러 치명적인 맹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것 자체를 파악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미 맹점이 아니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과학은 그런 맹점을 파악하였고, 또 인간 지각의 범위를 넓혀왔지만, 그것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종종(아니, 대체로) 맹점을 지닌 채 세상을 바라보며, 또 착각하고 있다. 그런 맹점은 인간이라는 종의 운명, 지구의 운명을 위협하고 있지만, 그것을 잘 인식하고 있지도 못하다. 우리의 현실에 대한 인식은 오랫동안 몸에 베인 것이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세상을 명확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우리의 맹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야 통은 지적한다. 맹점을 깨닫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제공하는 것은 과학이다.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이런 거울 복도에서 빠져나가는 출구다. 그리고 우리는 과학으로 그 길을 찾을 수 있다. 과학이 낡은 세계관을 깨뜨릴 수 있다. 과학은 우리가 보는 방법을 바꿈으로써 세상을 말 그대로 바꿀 수 있다.” (432쪽)


지야 통은 과학지상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과학이 우리의 지각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증거를 제시해왔고,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맹점을 보정해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도 과학의 가치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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