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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Mar 14. 2021

냄새가 이야기하는 것

심혁주, 《냄새와 그 냄새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


오해했다. 이런 내용인 줄은 몰랐다. A. S. 바워치의 《냄새》를 생각했었다. 그러니까 감각으로서의 ‘냄새’를 생각했던 셈이다.


하지만 내 인식의 지평은 그렇게 오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아왔다. 독서는 대체로 경험의 폭과 깊이를 넓혀주는 것은 맞지만, 스스로 책을 고르는 것은 늘 내 인식의 틀 내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생각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것은 때로는 편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처럼 뜻하지 않게 접하는 책은 오히려 그런 독서의 편향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그래서 인식의 폭을 넓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이렇게 만난 책으로 또 한 세계를 경험하고 그 세계를 깊게 파고들어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착각은 착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티베트학자다. 티베트학자는 이미 소리에 관해서 책을 낸 바가 있다. 그리고 여기선 냄새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냄새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바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대만 친구 리우저안에 대한 추억과, 그를 찾아 나선 티베트에서의 경험이 이 책의 줄거리다. 그렇지만 그 줄거리가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지언정 이 책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이해하는 데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저자는 상상을 하고 있으며, 그 상상에 기대어 동경하고 있다. 테베트의 수도(修道)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으며, 그곳과 대만, 그리고 이곳의 동물, 식물, 사물 들 속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그것은 원래 환상이지만, 결국은 저안의 마음이며, 또한 저자의 고백이기도 하다.


그럼 냄새는 무슨 역할을 하고 있을까?

“냄새는 기억을 근거로 한다. 기억은 경험과 추억을 바탕으로 한다. 추억은 과거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냄새는 과거에 대한 징표인 셈이며, 과거를 지니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정체성이다. 증명할 수는 없지만 냄새는 다른 어떤 것보다 사람을 더 명확하게 파악하도록 한다(불행하게도 난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그렇다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티베트의 고원지대로 숨어들었던 리우저안의 깨달음은 무엇이었을까?

17년 만에 우연하게 저자는 그를 만난다. 저안이는 신발을 벗고 맨발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뒤꿈치를 가리킨다.

“깨달음은, 공부는, 수행은, 관계는 현실과 떨어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공부는 발을 하늘에서 대롱거리는 것이 아니라 땅에 딛고서 구질구질한 현실 속에서도 그것들을 피하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야.”


결국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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