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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Mar 28. 2021

인류사의 오솔길 혹은 의붓자식

하랄트 하르만, 《문명은 왜 사라지는가》


먼 고대사로부터 이어진 세계사라고 해도 익숙한 역사가 있다. 4대 고대 문명이라든가, 그리스-로마의 역사에서 이어지는 유럽의 역사, 그리고 중국의 역사 같은 것들이다. 혹은 그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를지는 몰라도 잉카-마야 문명도 그 이름만큼은 무척이나 익숙하다. 우리는 이런 주류의 역사를 통해 인류사를 파악하고 있다. 그렇게 인류사를 파악하고 있다는 얘기는 다른 역사는 부록과 같다고 여기는 것이고, 또 세계사에 별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역사의 의붓자식인 셈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가령 우리 한반도의 역사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이 역사가 굉장히 훌륭하다고 여기고, 의미가 있다고 여기지만 과연 서양에서는 어떻게 바라볼까? 중국 역사의 한 귀퉁이쯤으로 여길 가능성이 높으며, 심지어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거의 한 줄의 인용 정도로 지나갈 지도 모른다. 현대에 관심을 받지 못한 역사는 잘 기술되지 않았고, 반복해서 잊혀져 왔다.

 

하랄트 하르만은 인류의 역사에서 주류로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알고는 있었으나 중요성을 간과했던 역사도 있고, 최근에야 발굴되고 인정받는 역사도 있다. 신화 속에서 존재하며 허구의 역사로 인식되다가 실제의 역사로 밝혀진 것도 있다. 잠깐이라도 세계사의 중심에 섰던 역사도 있다. 지금은 그 영향마저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간 역사도 있지만, 그 역사의 영향이 면면히 현재에 이르는 것도 있다.

 

현생 인류의 등장 이전, 쇠닝겐 창으로 대표되는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의 문화에서 시작해서 중앙 아시아와 아나톨리아, 현대의 동부 유럽과 그리스 일대, 아프리카,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까지 이르는 지역을 방대하고 훑고 있다. 이른바 4대 문명 중에는 인도 문명 정도나 곁다리로 등장할 뿐이다. 발음하기도 힘든 지역과 인물들의 이름은 이 문명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낯선 것인지를 확인시켜주기도 한다.

 

하랄트 하르만은 그 문명을 일군 이들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문명을 일구었는지,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고고학, 언어학, DNA 분석 등을 통해 설명한다. 여기서 DNA 분석을 이용한다는 것은 여기에 소개하는 연구 성과가 최신의 것을 반영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 연구 성과는 기존의 생각을 뒷받침하기도 하지만, 적지 않은 경우 예상과는 다른 결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넓고 깊게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서구 중심이라는 것은 별 수 없다. 전체적으로도 서구 중심적이지만(서술할 문명을 고르는 것부터), 아메리카로의 이동이라든가, 중국 신장 지구에서 발견된 누란의 금발 미녀 미라에 대한 설명 등에서 특히 그런 면모를 읽을 수 있다(어차피 이 책은 독일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책이니). 하지만 영국이나 미국 출신의 저자와는 좀 다른 느낌이다. 이 책에 대해 해제를 쓴 강인욱 교수의 분석대로라면 식민지를 많이 보유했던 영국이 자신의 식민지를 중심으로 역사를 연구했던 것에 비하면, 독일은 보유했던 식민지가 적었던 탓에 다른 유럽 국가의 역사가가 관심을 갖지 않는 지역에 대한 연구가 많았다고 한다. 역시 제국주의적인 목적과 관점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이렇게 조금은 결이 다른 역사서도 접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역사는 편집되기 마련이며, 그 편집에는 편견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 문명들은 사라져 갔거나, 파괴되었다. 흔적을 남겼으니 우리는 그 역사를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해석이 다 옳다고 볼 수는 없다. 부단히 극복하려고 하겠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그 문명과 역사를 해석하고 있을 것이다. 그 문명들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수천 년을 존속한 문명이 그 중심을 옮기거나 파괴되는 것은, 내 생각에는 어쩌면 필연적인 듯하다. 우리의 도시가 영속하리라 믿는 것이 어불성설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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