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문의 『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
역사를 생각하는, 역사에 대해 쓰는, 역사책을 읽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그게 어떤 교훈이나 지침, 깨달을 주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재미있기 때문이다. 역사에 대해 쓰는 이유로, 그리고 그것을 읽는 이유로 가장 많이 답하는 것은 전자이다. 거기에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니 하는 역사에 대한 거창한 정의와 의의 등을 포함한다. 물론 옳은 얘기다. 하지만, 그게 재미 있지 않다면?
역사에 관해 연구하고 쓰는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역사에 관한 책을 읽는 사람은 우선은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기 때문에 읽는 게 아닐까? 물론 역사의 의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에 관한 이야기가 무미건조하다면 금방 물리고 한쪽 구석으로 치우기 마련이다. 재미 있다는 것은 당연히 웃기다는 얘기는 아니다. 심각한 이야기도 재미 있을 수 있으며, 슬픈 이야기도 재미 있을 수 있다. 읽는 재미 말이다. (내 고3시절을 생각해봐도 그렇다. 매일 밤 책장의 누런 색의 역사 전집을 2,30분 읽고 자는 게 내 마지막 일과였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도 않는 역사 속의 인물에 대한 짧은 글들이었던 것 같다. 거기서 무슨 교훈을 얻고자 했겠는가? 그냥 고3의 팍팍한 일과를 마무리하면서 뭔가 재미난 읽을거리로 역사를 대했지.)
정기문 교수의 이 책은 아주 당당하게 ‘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재미난 이야기이니 알고 싶고, 읽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역사 속에는 무수하게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으며, 그것들을 서로 엮으면 너무나도 재미 있는 이야기가 되고, 또 그것을 전해주지 않으면 못 견딘다. 또 독자는 그것을 읽지 않으면 못 견딘다. 뭐, 이런 순환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그가 찾은 이야기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가장 먼저는 영화로도, 소설로도 유명한 마르텡 게르라고 하는 사내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서 중세에서 근대에 이를 때까지의 사람에 대한 인식의 문제,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이끌어낸다(‘시각적 후진성’). 또 성(城)과, 말똥, 대포를 연관시키고 있으며, 유대인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해 자본주의 대열에서 이탈한 에스파냐에 대해서도 쓰고 있다. 그리고 가난과 부(富)에 대한 서양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는 생각, 즉 노동에 대한 생각을 알려주고 있으며, 보름달 신앙과 늑대 신앙의 결합, 다산 신앙, 넘쳐 났던 위조된 문서(“하늘에서 내려온 편지)” 이야기, 신의 뜻을 알겠답시고 무고한 사람들을 물 속에 빠뜨리던 시절의 이야기(죽으면 무죄, 살아나면 유죄. 어느 쪽이나 목숨을 부지하기는 어려웠던 어이없던 시절), 천사에 대한 인식에 관한 이야기, 부르주아들이 유모를 두었던 까닭(잘못된 상식이 쾌락과 연결되면 새로운 풍속이 생겨난다), 여성에 대한 잔혹스런 역사, ‘악의 꽃’이라 불렸던 청소년기에 관한 역사 속 이야기 등등.
그런데 이렇게 보면 그냥 재미난 이야기만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되, 뒤돌아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아니 생각해야 하는 소재며, 주제 들이다. 그래서 사실은 역사란 교훈적인 이야기만도, 재미난 이야기만도 아니다. 그게 결합되었을 때 잘 읽히고, 또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정기문 교수의 이 책은 최소 잘 읽히는 책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