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문의 『역사를 재미난 이야기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역사책』
우선 이 역사 속 인물 일곱 명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가 발견한 것부터.
구성이 ‘남-여-남-여-남-여-남’이다. 여성을 내세우지 않는 역사책 치고 여성에 대한 분량이 상당히 많다. 정기문 교수는 이 책의 쌍둥이 같다고 할 수 있는 『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에서도 역사 속 여성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었고, 책 앞 쪽의 약력을 보면 이미 『내 딸들을 위한 여성사』란 책을 낸 바 있다. 그리고 소개하고 있는 남성들을 보면 대체로 부정적인 데 반해(로마 황제 네로, 콜럼버스, 로베스피에르는 물론이고, 다윗도 그 정체에 관해서 부정적이다), 여성들에 대해서는 모두 긍정적이다. 차이는 또 있다. 남성들은 그 이름만큼은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인 데 반해, 소개하고 있는 여성들(아스파시아, 테오도라, 엘리자베스 1세)은 대중들에게 그다지 알 열려져 있는 인물들이 아니다. 그래서 남성들에 대해서는 그 ‘잘 알려져 있음’을 뒤집으려는 게 의도이고, 여성들에 대해서는 알리고자 하는 게 의도라는 걸 알 수 있다.
남성들부터 보면, 골리앗을 돌멩이 하나로 물리쳤다는 다윗의 이야기는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유대인이 나라를 통합하기 위해 다윗을 위대한 인물로 만들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여러 전승되는 이야기를 짜집기했다. 다윗과 그 아들 솔로몬 시대에 위대한 왕국을 건설했다는 것도 역사적으로는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 다음은 폭군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네로 황제다(우리 세대에 그의 이미지는 코미디언 최양락이 연기했던 코미디 프로에 기인한다. 참 저렴한 인상이긴 하다). 그가 많은 사람들을 죽인 것은 맞지만, 귀족과 조세징수자 들이 누리는 특권을 폐지했고, 평민들과 어울리는(당시 귀족들에는 매우 꼴 사나운 모양이었던) 등 평민들에게는 꽤나 인기 있는 황제였다. 그러나 귀족들은 그를 죽인 후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인물로 규정했고, 결국은 다시 없을 폭군으로 만들어버렸다.
콜럼버스에 대해서야 정기문의 스승 주경철 교수의 책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종말론적 신비주의자』를 비롯하여 많은 책을 통해서, 이제는 잘 알고 있다. 그가 원주민들에 대해 전혀 자애롭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다른 당대 지식인들과 달리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확신하였다는 것도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그 당시 이미 상식 수준이 되어 있었다. 다만 그는 지구의 크기를 잘못 알고 있던 바람에, 그 터무니 없는 항해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어떤 선지적인 혜안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 아니라, 단지 모험가였고, 결국은 황금광에다 노예사냥꾼이었다. 남성으로 끝은 로베스피에르에 대해서다. 정기문 교수의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생각은 장 마생의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과 상당히 기대고 있는 것 같은데, 그가 공포정치를 시작한 인물도 아니었으며, 그가 그 공포정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 골자다. 그리고 그는 별명 대로 ‘부패하지 않는’ ‘혁명의 파수꾼’이었다. 라파예트, 당통, 마라 등이 금방 복권되어 칭송받고, 기려지는 것과는 달리 로베스피에르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어떤가. 사실 남성들에 대한 장에 비해 여성들에 대한 장은 대체로 짧다. 그건 그들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문헌도 많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크라테스의 스승이었으며, 그리스 민주주의의 수호자였던 페리클레스의 아내였던 아스파시아가 특히 그렇다. 소크라테스와 페리클레스(그의 연설문을 아내였던 아스파시아가 쓴 것으로 보고 있다. 적어도 조언은 했을 것으로)의 명성과는 달리 아스파시아의 이름은 대중에게는 너무도 낯설다. 테오도라의 경우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동로마제국을 부흥시킨 유스티니아누스와 공동 황제의 역할을 했던 테오도라이지만,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성 소피아 성당 등 그 이름이 후세에 (긍정적인 의미로) 널리 전해지는 유스티니아누스와는 달리 테오도라의 이름은 잘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에 비해 엘리자베스 1세의 경우는 그래도 좀 낫다. 하지만 영국 국민들에게도 현재 여왕 엘리자베스 2세나 빅토리아 여왕보다 뒤에 서 있는 인물이 엘리자베스 1세다.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격파하면서 변방의 섬나라였던 영국을 일대 강국의 반열로 들어설 수 있는 기틀을 만든 여왕이 바로 엘리자베스 1세다. 정기문 교수는 그 엘리자베스 1세가 결혼도 하지 않고, 남에게 맨얼굴을 보이지 않으려 하고, 절대 늙은 모습의 초상화를 그리지 못하게 했던 사연을 추적한다.
제목만 보면 역사 속 우스개나 좀 희극적인 요소를 지닌 인물에 대한 것 같지만, 이처럼 진지한 얘기들이다. 그러나 여전히 역사는 재미난 이야기, 읽을 만한 이야기라는 저자의 주장, 생각에 반기를 들 수 없다. 진지한 얘기를 이만큼 재미있게 읽기는 힘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