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원주의의 매혹, 신경과학과 추상화

에릭 캔델의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

by ENA

기억에 관한 분자 메커니즘을 밝힌 공로로 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에릭 캔델은 이미 『통찰의 시대』를 통해 미술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통찰의 시대』에서 자신의 고향, 오스트리아 빈에 대한 애정과 함께 그곳을 중심으로 꽃피웠던 표현주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오스카어 코코슈카의 그림을 분석하고, 또 그것을 신경학과 연결시켰다. 미술에서의 감동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그들의 초상화에 대한 분석을 통해 심도 깊게 분석하고 있었다.


그의 미술에 대한 관심과 뇌과학의 발견과의 통합은 이어진다.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는 『통찰의 시대』보다 훨씬 가볍다. 여기서 캔델은 뉴욕학파의 추상표현주의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추상 미술의 선구자인 터너와 모네로부터 시작해서, 몬드리안을 거쳐 뉴욕학파의 화가들, 즉 데 쿠닝, 폴록, 로스코, 모리스 루이스, 앤디 워홀 등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들의 추상화들은 뇌과학의 측면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왜 현대에 그런 추상 미술이 성공을 거두게 되었는지를 분석한다. 그 매개는 바로 환원주의(reductionism)다.


여기서 켄델이 사용하는 환원주의란, 과학과 미술에서 서로 달리 쓰이는 용어이면서도 서로를 잇는 용어이기도 하다. 과학에서 환원주의는 ‘기초적, 기계적 수준에서 구성 요소 중 하나를 조사함으로써 복잡한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과학적 환원주의는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복잡한 대상을 바로 이해할 수 없을 때 그 대상을 이해하는 수단으로써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또한 지금까지 엄청난 성공의 예를 보여줘 왔다. 이 과학의 환원주의가 ‘강력한 감정을 환원시키는 하나의 선, 하나의 복잡한 장면, 하나의 미술 작품의 지각에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 캔델의 주장이다. 구상적 표현 대상을 ‘선과 색’ 등으로 환원시키는 미술이 바로 추상 미술이다. 이렇게 과학과 추상 미술은 연결된다.


그렇다면 추상 미술은 왜 성공했는가? 미술의 성공은 감상자들의 감정을 흔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작품을 보기 전과는 다른, 어떤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게 왜 가능한지에 대해서 캔델은 뇌과학의 기억과 학습에 대한 연구 성과를 통해 분석한다(기억과 학습에 대한 연구가 바로 환원주의적 연구의 대표적인 예이기도 하다). 학습이라는 것은, ‘신경 회로의 연결 부위의 강도를 조절’함으로써 기억을 형성한다. 어떤 것을 시각을 통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과정은 상향 처리와 하향 처리의 두 방향으로 이루어지는데, 상향 처리가 대상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라면, 하향 처리는 이전의 기억을 통해서 대상을 지각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추상 미술은 감상자에게 하향 처리의 과정에 더 의존하게 한다. 즉, 화가는 ‘이미지를 형태, 선, 색, 빛으로 환원’함으로써, 감상자는 그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 ‘감정, 상상, 창의성에 더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추상화가는 회화적 세부 사항을 제공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가 자신의 독특한 경험을 토대로 그림을 완성할 수 있도록 ‘조건’을 창조한다.’


캔델은 이러한 상황을 구상화가에서 추상화가로 넘어간 화가들을 통해서 보여준다. 왜 그들이 그린 구상화보다 추상화, 그저 선만 존재하고, 색만 존재하는, 혹은 그냥 물감을 뿌려댄 그림들에 사람들이 더 열광했는지는 바로 뇌과학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충분히 납득이 가는 설명이다(혹은 알고 있지만, 이렇게 뇌과학의 용어를 써서 더 있어 보이는지도 모른다).


캔델의 시도는 분명 두 문화의 통합에 관한 한 시도다. 벌어지기만 하는 과학과 인문∙예술 분야가 이렇게 행복하게 만나는 경우는 드물다. 켄델은 신경과학에 대한 설명 수준을 대폭 낮춤으로써 두 문화 사이의 거리를 더 좁혀놓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현대 추상 미술에 대해 배운 게 더 많았다. 그냥 애호가의 수준에 머물지 않고, 본격적으로 분석하고 정교한 논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통찰의 시대』가 감동적이었고, 이 책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도 못지 않게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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