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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Apr 11. 2021

보이지 않는 손? 보이지 않는 후크!

피터 리슨, 《후크 선장의 보이지 않는 손》


해적에 대한 인상은 어린 시절 매주 TV 애니메이션 <보물섬>과 커서 본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으로 결정되었다. 아마 대부분이 그러지 않을까?(물론 연령대마다 조금 다를 순 있겠지만) 난폭하며 제멋대로이지만, 어느 정도 낭만을 지닌 집단이 바로 해적에 대한 인상이다.

 

피터 리슨은 해적에 대한 인상을 확 바꾸어 놓는다. 어린 시절부터 해적에 푹 빠졌었다는 그가 만약에 역사학자라면 해적의 정체와 역사에 관해서 주로 썼겠지만, 그는 경제학자다. 그래서 해적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본 해적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해적에 대한 생각을 확 바꾸어 놓고 있다.

 

일단 제목부터 그렇다. 우리말 제목 “후크 선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나 원제 “The Invisible Hook” (보이지 않는 후크)는 모두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은유에서 가져온 말이다. 자본주의를 표현하는 이 은유를 썼듯이 해적의 경제를 자본주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해적에 대한 생각과 다른 점부터 보면, 우선 해적 선장을 해적들의 투표로 결정했다는 것부터 들 수 있다. 그것도 1인 1표제에 기초했고, 선장이 해적들의 이익에 거슬렀다면 가차 없이 그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권력 분산을 위해서 사무장까지 두었다(그 직위도 투표로 선출했다). 물론 그들이 민주적인 의식이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선원이었던 그들이 상선 선장에게 받았던 고통에 대한 반작용이 있었고, 또 해적이라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범죄적인 이기심이 그런 해적선의 민주주의가 만들어졌다.

 

또한 해적선에는 나름의 규약이 있었다. 무법천지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고, 노략할 물건을 나누는 규정도 분명했다. 또한 놀랍게도 다쳤을 때, 어디를 다쳤는지에 따라 보상하는 원칙도 두고 있었다. 말하자면 사회안전망을 갖추고 있었다는 얘기다.

 

해적선의 깃발은 고도의 신호 전달의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이 행했다는 고문도 실제보다 과장해서 알려지게 함으로써 ‘공포’를 브랜드화하여 자신들의 이익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흔히 포획한 상선의 선원을 강제로 징집하여 해적화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자원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게 훨씬(약 100배?) 이익이 되기 때문이었다. 다만 붙잡혔을 경우 유죄 판결이 나면 사형당하기 때문에 그 위험을 줄이기 위해 강제 징집되었다는 소문을 내고, 또 광고까지 냈다. 그러니까 강제로 해적에 편입시켰다는 인식은 오히려 해적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는 얘기다.

 

또 놀라운 것 중 하나는 해적 중에 흑인들이 적지 않았고, 당시 노예 시대였음에도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으로 활약을 한 경우가 훨씬 많았다는 점이다. 물론 그들이 노예 제도에 관하여 전향적인 의식을 지닌 진보주의자여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비용은 집중되고 편익은 분산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말이지만, 간단히 얘기하자면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기보다 자유인으로 함께 활약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해적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조직이었고, 그렇게 운용된 이유는 그들이 그 시대의 사람들과는 매우 다른 사람들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경제적 법칙에 의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해적은 매우 모순적인 존재였다. 평화주의자였지만 사디스트적 면모가 다분했다. 보물을 찾아 헤매는 사회주의자였고, 해골과 뼈다귀의 깃발로 자신을 알리지만 또한 자신의 존재를 감추어야 했다. 구성원들을 강제로 징집하는 형식을 취했던 자유주의자들이었고, 정부가 없는 사회에서 엄격한 규약을 지키며 살아가는 존재였다. 피터 리슨은 그런 모순의 존재인 해적을 이해하기 위해 경제학의 눈으로 분석하고 있다. 경제학의 눈을 빌리면서 해적의 낭만을 제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런 분석이 오히려 해적으로 더 낭만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해적을 바라보는 시각, 혹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과장되게, 혹은 오해하고 있는 집단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느 하나일 수는 없다. 그 하나의 시각이 바로 경제학의 시각인데, 독특하다는 것을 넘어서서 흥미롭고, 또 생각할 거리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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