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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Apr 10. 2021

유명인의 뇌질환

고나가야 마사아키, 《세계사를 바꾼 21인의 위험한 뇌》

세계사를 바꾼 것들이 참 많다.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다. 카오스 이론에 의하면 ‘베이징에서 나비 날개짓이 뉴욕에 폭풍을 몰고 올 수도 있다’고 하니 무엇이든 역사 속에서 바로 그런 일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다른 경로를 탔다면 역사의 경로 역시 바뀌었을 것이다. 다만 과거는 이미 결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니, 역사에 ‘만약에’라는 가정이 필요 없다고 할 뿐이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어떤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면 다른 상황을 가정해보는 것은 가능한 일일뿐더러, 오히려 그래봐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세계사를 바꾼(사실 더 정확한 표현은 “세계사를 바꿀 뻔한”이 아닐까 싶다) 것들에서 이번에는 유명인의 뇌질환 얘기다. 또 생각해보면 이것 역시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다. 인간의 사고가 이뤄지는 게 뇌이니만큼, 세계사에 영향을 미쳤던, 미칠 수 있었던 유명인의 뇌질환이야말로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또 누구든 어느 정도의 질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만큼 뇌질환 역시 그리 드문 것이 아니었을 것이니 유명인의 뇌질환은 역사의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뇌과학 책이 매우 유행을 타고 있고, 뇌질환에 대해 쓴 (좋은) 책도 적지 않다. 그런데 신경내과학을 전공한 일본인 저자인 고나가야 마사아키의 이 책이 그런 책들과 다른 점은, 뇌질환의 역사에 대해서 다루기보다(그러면서 유명인의 뇌질환이 언급되는 게 아니라) 역사 속 유명인의 행적을 이야기하면서 뇌질환을 다룬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좀 더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역사 속의 그 인물이 가졌던 뇌질환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 어떤 유명인이 어떤 뇌질환을 앓았을까? 그건 다음과 같다.


잔 다르크와 도스토옙스키의 측두엽뇌전증(흔히 ‘간질’이라 불렸던 뇌질환)

로마 황제 막시미누스의 뇌하수체 거인증과 말단 비대증

클레오파트라가 죽음의 방식으로 택했던 코브라의 독이 일으키는 중증근무력증

남북전쟁 당시 북군 총사령관이었던 그랜트 장군의 편두통(남군의 항복하는 시점에 묘하게 편두통이 사라지면서 아주 관대한 결정을 내렸다)

나치와 히틀러의 집권으로 이어진 바이마르 공화국의 힌덴부르크 대통령의 치매와 히틀러의 파킨슨병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 총사령관이었던 더들리 파운드의 뇌종양

2차 세계대전의 종전 당시 소련의 의도에 말려들게 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고혈압뇌출혈

중국 마오쩌둥의 흔히 루게릭병이라고 하는 근위축측삭경화증

소련의 붕괴에 방아쇠를 당긴 소련 서기장 브레즈네프의 혈관치매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의 펀치드렁크 증후군

시인 보들레르의 창작열을 지피고, 마피아 알 카포네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매독

미국 포크송의 대가 우디 거스리의 헌팅턴병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감방에 붙여져 있던 사진의 주인공 리타 헤이워스의 알츠하이머병

미국 스리마일섬과 소련 체르노벨의 비극을 가져온 수면무호흡 증후군

천재 골퍼로 추앙받아 바비 존스를 추락시킨 척수공동증

페라리사의 후계자를 요절하게 만든 근위축증


이렇게 보면 꼭 세계사를 바꾸었을까 싶은 꼭지도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애처롭게 불쌍해보이지, 위험하게 여겨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뇌질환이 그들의 삶을 급격하게 바꾸었고, 그렇게 급격하게 바뀐 한 사람의 운명이 역사의 물길을 완전히 뒤바꾸거나, 혹은 조금이라고 경로를 바꾸게 한 것만은 부인할 수가 없다.


이 질병 중에는 아직도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은 질병이 적지 않다. 이를테면 헌팅턴병은 그 유전적 원인이 최초로 밝혀진 병임에도 치료할 수 없고, 근위축측삭경화증(루게릭병) 역시 많은 기기들로 예전보다 생활할 수 있는 여지가 늘었을 뿐 치료할 수 없다. 알츠하이머병도 초기에 발견한 경우에 진행을 늦추는 방법이 제시되었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완전한 치료법이 발견된 경우가 드물다.

이건 또 무엇을 말할까? 앞으로도 뇌질환으로 역사의 경로가 수도 없이 바뀔 것이란 얘기인가? 그러나 그렇게 바뀐 역사의 경로가 실제로는 결정된 과거로서 우리가 겪는 역사가 될 것이라고 보는 게 더 맞다. 다만 여러 지도자의 경우에서 보듯이 질환을 가지고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는 경우 국가적 비극을 가져왔다. 어떤 지도자를 가질 것인가는 국민이 할 바이다. 유명인의 뇌질환에 대해서 읽는 게 그저 흥밋거리만이 아닌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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