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A Apr 29. 2021

우리가 그들과 살아가기 위해

가즈오 이시구로, 《클라라와 태양》


노벨문학상을 탄 작가의 작품을 읽은 게 꽤 될 테지만, 노벨문학상을 타기 전에 수상작가의 작품을 먼저 읽은 경우는 단 한 경우다(적어도 지금까지는). 바로 가즈오 이시구로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을 2016년에 읽었고,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2017년의 일이었다.


《클라라와 태양》은 가즈오 이시구로가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으로 내놓은 작품이다. 인터뷰를 보면 스톡홀름에 가기 전에 이미 1/3 정도 쓰고 있었다고 한다. 그 얘기는 노벨문학상 수상이 이 작품의 주제 등에 큰 영향을 까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노벨문학상이라는 무게를 스스로 느끼고 뭔가 거대한 주제를 다뤄야겠다는 의도를 갖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내가 느끼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세계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환상, 또는 몽환적. 이 정도일 것 같다. 그 스스로는 소설의 배경이라든가 인물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내가 읽기에는 상당히 불분명한 경우가 많으며, 사건의 전개 자체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 소설을 어떤 구체성을 띤 흥미로운 이야기로 생각한다면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은 거기에 부합한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은 읽는 건 그리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바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되지만 그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은 친절하지 않다. 친절하지 않은 소설을 읽을 때의 반응은 다양할 수 있는데, 그런 경우 소설가에게 가장 바람직한 반응은 당연히 소설에 집중하는 것이다. 다행히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은 그런 경우가 많다. 미묘하게 반복되는 상황이지만 거기서 변화하는 심리를 읽어내기 위해 애를 쓰게 된다. 그렇게 그의 소설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읽힌다.


《클라라와 태양》 역시 시대적 배경부터 애매모호하다. 에이에프(AF, Artificial Friend)가 주인공이니만큼 어느 정도는 먼 미래인 것 같지만,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나 상황은 오히려 지금보다도 과거처럼 여겨진다. 그들이 서로 연락하는 수단에서 휴대폰은 아예 등장하지 않고, 그들이 살아가는 도시나 마을 역시 미래는 커녕 현대적이라고 전혀 여겨지지 않는다. 미래 사회라기보다는 지금 세계를 이야기하기 위해 화자로서 AF를 등장시킨 것뿐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또 이런 생각도 해본다. 우리가 첨단의 기기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그 의식은 과거에 머물러 그것들과 어울려서 살아가야 하는지 잘 모르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 문명에 대한 반응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어느 시대나 새로운 것에 적응이 늦거나, 혹은 부조화를 이루는 경우가 있는데, 앞으로 우리가 맞닥뜨려야 할 미래는 그런 부적응, 부조화가 더욱 뚜렷해지고, 또한 그 관계에 의해 사회적 위치가 결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 지금까지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은 인간뿐이었던 세계에서, 이제는 반려동물이 그 자리에 들어오고 있고, 또 앞으로는 그 범주에 이런 인조인간(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든)을 포함시켜야 할 시대가 오고 말 것이라는 예상도 하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보이지 않는 손? 보이지 않는 후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