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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Apr 30. 2021

종의 기원을 다시 읽다

다윈(신현철 역주), 《종의 기원 톺아보기》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과학사에서, 아니 지성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책이다. 인류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꾼 책으로 첫째, 둘째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책이라는 평가도 많다. 이 책에 관한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이미 자연선택의 원리를 정립했던 다윈이 오랫동안 책을 쓰지 않다(이미 요약본을 써서 몇몇 친한 과학자들에게 보이긴 했지만) 월리스의 편지를 받은 후 급하게 발표하고, 또 이 책을 썼다는 얘기는 식상할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방대한 책을 구상하고 있다 부랴부랴 쓴 ‘짧은’(!) 책이 바로 《종의 기원》이다. 그렇지만 《종의 기원》은 결코 간단한 책이 아니다. 시대를 뛰어넘으며 읽히고 있지만, 지금도 읽기에 그리 녹록한 책도 아니다.


《종의 기원》은 그저 현대적인 어법으로 쓰인 책이 아니라서 읽기 쉽지 않은 책은 아니다. 다윈은 대단히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고, 바로 그 다양한 분야의 방대한 자료에 대해 이해하기가 쉽지 않기에 이 책이 어렵다고 봐야 한다. 즉, 독자가 다윈의 지적 수준에 한참 못 미치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종의 기원》을 읽기 위해서는 인내심도 필요하고, 도움도 필요하다.


신현철 교수가 역주를 단 《종의 기원 톺아보기》가 의미가 있는 지점은 바로 그 지점이다. 다윈이 언급하고 있는 생물들과 지역 등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종의 기원》이라는 책의 구조, 그리고 다윈의 의도를 해설하는 등 《종의 기원》을 통독하는 데 크게 도움을 준다. 사실 2,200여 개에 달하는 주석 중 모두가 이 책을 읽는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읽는 이마다 관심이 다르고, 또 수준도 다르다. 그래서 읽는 이마다 필요한 주석이 있고, 필요치 않는 주석도 있다. 물론 궁금한데 간혹 주석이 없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신현철 교수의 주속은 최소공약수가 아니라 최소공배수 격이라 할 수 있다. 찾아보고, 해석한 노고에 감사할 수 밖에 없다.


《종의 기원》을 읽다보면 다윈이 자신의 이론, 자연선택설 혹은 ‘변이를 동반한 친연관계’에 대한 이론을 단순하게 주장만 한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헉슬리가 이렇게 간단한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자신의 머리를 쳤다고 했을 만큼 그 아이디어 자체는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그 이론을 정립하고도 수십 년 동안 발표하지 않고 타당성을 검증해왔다. 그런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이론의 발표에는 커다란 저항을 예상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아주 정교하고도 방대한 증명이 필요했다. 《종의 기원》은 바로 그 정교하고도 방대한 증명의 기록이다.


또한 《종의 기원》은 어떤 이론의 증명으로만 읽을 수 있는 책도 아니다. 다윈이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모든 방대한 예는 그것 자체로 흥미롭다. 스스로 자신을 자연사학자라 불렀던 다윈은 자연과 생물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진화를 통하여 이루어진 생물의 다양성에 많은 사람들도 감탄하고 공감하기를 기대했다. 《종의 기원》을 읽는 것은 다윈의 논증을 따라가는 것임과 동시에 지구에서 만들어져 진화를 거듭하고, 현재의 생태계를 이룬 생물들에 대해 인식하고 감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 전에 《종의 기원》을 읽었었다. 오래 전에 읽은 책들에 대해 그 내용이 어렴풋해지고 잊혀지는 것과는 달리 《종의 기원》은 그럴 수 없는 책이었다. 비록 《종의 기원》을 앞에 두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진화에 대한 강의도 했었고, 또 관련한 일도 했으니 그 품에서 지낸 것이었고, 또한 생물학을 연구하는 것은 어찌 되었든 《종의 기원》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짧지 않은 시간을 두고 다시 읽으며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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