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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May 19. 2021

그들은 현대문명의 '불'을 가져다주었다

새런 버트시 맥그레인, 《화학의 프로메테우스》

우선 제목에 대해서부터.

우리말 제목은 “화학의 프로메테우스이고”, 원제는 “Prometheans in the Lab”이다. 부제가 “Chemistry and the Making of the Modern World”이고, 소개하는 과학자가 모두 화학자, 혹은 화학과 관련된 업적을 쌓은 과학자이니 “화학의 프로메테우스”라는 제목은 별로 원제에서 멀리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읽으면서 더 주목하게 되는 것은 바로 ‘프로메테우스’다. 프로메테우스는 신으로부터 불을 훔쳐다 인간에게 건네주었다. 불은 인간의 문명을 가능케 한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즉 여기에 소개하고 있는 화학자들이 그와 같이 현대의 문명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가져다 준 인물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는 그들이 어떤 이론을 발견한 인물이기보다는 거의 다 무엇인가를 발명한 인물들이다. 거기에 프로메테우스가 화가 난 제우스로부터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형벌을 받은 것처럼 적지 않은 이들이 순탄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까지 보태야 할 것 같다.


소개하고 있는 인물들을 소개하면 이렇다.

프랑스 혁명 시기에 값싼 비누 제조에 쓰이는 세탁 소다를 공업적으로 만드는 과정을 발명한 니콜라 르블랑

모브(mauve)라는 최초의 합성 염료를 만든 윌리엄 헨리 퍼킨(그의 일대기에 대해서는 사이먼 가필드의 《모브》란 책에서 잘 소개하고 있다)

설탕 제조 방법을 혁신시킨 노버트 릴리외

원자가 이론을 맨처음 제기하고 오염된 물이 병의 원인임을 밝혀낸 화학자 에드워드 프랭클랜드

질소 고정법을 발명하여 농업 혁명을 가능케 했으나, 또한 독가스를 개발한 프리츠 하버(그에 관해서는 토머스 헤이거의 《공기의 연금술》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유연 가솔린을 발명하여 자동차 산업을 부흥시킨 이끈(그러나 동시에 심각한 납중독의 시기가 왔지만) 토머스 미즐리

나일론을 개발한 윌리스 흄 캐더러스

DDT를 개발하여 말라리아와 발진티푸스를 몰아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헤르만 뮐러

평생 납 중독의 위험성을 고발한 클레어 패터슨.


퍼킨과 하버에 관해서는 앞서 밝힌 책에서 더 자세히 다루고 있기 때문에 잘 알려져 있고, 미즐리나 캐더러스, 뮐러에 관해서도(워낙에 파급력이 크고, 또 흥미로운 삶을 산 인물들이기에) 어느 정도는 알려져 있으나 나머지는 대중적으로 그렇게 잘 알려져 있는 인물들이 아니다. 패터슨과 같은 경우 미세한 납 함유량을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함으로써 납 중독의 위험성을 고발한 인물이었지만 그 방법을 이용하여 지구의 나이가 45억 년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낸 지질학자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교과서에서도 그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콜레라를 예방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스노의 업적(역학 조사를 통해 원인을 추론하고 우물의 손잡이 꼭지를 떼어냄으로써)은 잘 알려져 있지만 프랭클랜드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현대 문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들이면서도 어떤 인물은 잘 알려져 있고, 또 다른 인물은 거의 잊혀져 온 것은 과연 어떤 이유인지 그 과정에 대한 연구도 매우 흥미로울 듯하다.


여기서 논란이 되는 업적도 있다. 르블랑의 세탁 소다 공장은 그 당시부터 엄청난 환경 오염을 일으키고 있었고, 미즐리가 개발한 사에틸납을 포함한 유연 휘발유는 심각한 납 중독을 일으켰다(이에 대해서 패터슨이 폭로한다). DDT는 1962년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을 통해 환경적으로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고, 건강해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그래서 DDT를 개발한 공로로 뮐러에게 주어진 노벨상에 대한 비판도 있다. 나일론을 의류에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에서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지만 나일론을 비롯한 플라스틱은 현재 환경적으로 골칫덩어리 이상이 되었다(물론 그 효용성을 버릴 수는 없지만. 그래서 더 문제다). 적지 않은 과학자들이 이러한 문제에 눈을 감거나 견강부회의 논리로 옹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뮐러는 DDT의 위험성에 대해 미리부터 경고를 했으며, 또한 DDT 사용을 중단한 이후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상황이 오기도 했다. 화학을 비롯한 과학은 어느 한 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이러한 사례들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가 있는 것이다. 비록 과학 만능주의는 그 자체로 위험하지만 인류의 현대 문명을 가능케 한 것도, 그것들의 위험성이 있다는 것도 밝힌 것도, 그리고 그 위험성을 극복하는 방법도 모두 과학에 달려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도 없다.


앞서도 밝혔듯이 프로메테우스의 운명과도 같이 여기의 인물들도 순탄하지 않은 삶을 산 경우가 많다. 르블랑은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끝내 가난 속에 삶을 마감해야 했고, 자유 신분의 유색인으로 남북 전쟁 이전에 살았던 릴리외는 결국 프랑스로 떠나고 다시는 미국의 뉴올리안즈로 돌아오지 않았다. 프랭클랜드는 평생 자신의 아버지를 밝히지 못하고 살아야 했으며, 하버는 유대인으로 아내의 자살을 통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전쟁 승리를 위해 독가스를 제조하였지만 끝내는 나치의 버림을 받았고(이 책은 하버를 좀 미화하는 느낌도 든다), 미즐리는 50대에 척추성 소아마비에 걸려 (아마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버드에서 듀퐁으로 옮긴 후 나일론을 개발한 캐더러스는 정신 질환을 앓다 결국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책 소개에서는 이 책을 “위대한 화학자들의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하고 있지만, 그들의 발견과 발명이 가져온 파급력과 그들의 (대체로) 순탄치 못했던 삶을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의미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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