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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May 18. 2021

감염병과 인류

박한선, 구형찬, 《감염병 인류》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감염병이 인류에게 얼마나 영향이 끼쳤었는지에 대해 새삼 인식하게 된다. 감염병을 전공하는 입장에서도 그렇다. 그저 교과서에서 접했던 지식과 상황이 그대로 현재에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19와 관련해서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나오고 있다. 바이러스를 비롯해서 세균 등 각종 병원체에 대한 책, 역사 속의 감염질환에 대한 책, 코로나-19 이후에 벌어질 세계에 대한 조망에 관한 책 등등. 《감염병 인류》도 그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잔뜩 쌓아놓은 책 더미에 그저 한 권의 책을 얹는 것만은 아니다. 인류와 감염병과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야 여느 책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이나 앞으로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생각 등은 그것 자체로는 역시 특별할 것이 없지만, 그 내용들을 모두 전체적으로 포괄하는 책은 그리 흔해 보이지 않는다.


박한선, 구형찬. 두 저자가 감염병과 병원체, 면역 등에 대한 장들을 거치면서 다다른 지점은 ‘행동면역’이다. 선천면역(innate immunity)나 획득면역(acquired immunity)와 같은 신체의 면역체계와는 달리 인간의 뇌를 통한 면역,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정서, 인지, 행동 반응 등을 일컫는 것이 바로 행동면역이다. 이를테면 외부 인물에 대한 혐오라든가 낯선 음식에 대한 비선호 같은 것들이다. 이 행동면역은 신체적 면역과 더불어 감염병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하는 중요한 메커니즘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행동면역체계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인종에 대한 혐오나 환자에 대한 극도의 배제 같은 것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행동면역의 부정적 사례는 역사 속에 넘쳐난다. 비록 감염병으로부터 자신과 이웃을 막으려는 기제이지만 현대의 의료체계가 발달한 상황에서도 여기에 의존하는 것은 지나치게 부작용이 크다. 우리는 이것을 목격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이제는 우리가 감염병을 정복했다는 얘기를 할 수가 없다. 한때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으나 코로나-19를 보면 정말 용감했다, 혹은 무식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앞으로 새로운 감염병을 계속해서 겪으며 살아갈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감염병과의 관계를 지금과는 달리 정립해야 한다. 감염병이 인류의 윤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알게 되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면 우리는 새로운 윤리 체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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