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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May 23. 2021

우리는 세상과 인간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

뤼트허르 브레흐만, 《휴먼카인드》


인간의 본성은 선(善)한가, 악(惡)한가. 오랜 기간 동안의 논쟁이지만, 현대로 올수록 홉스의 세계, 즉 인간은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쪽이 우세해졌다. 인간에 대한 그런 인식은, 따라서 교육과 사회화가 필요하다는 행동 지침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폭력적 성향은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오고, 세상은 나빠지고 있다고 한다. 닉 레인의 《낙관적 이성주의자》나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세상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기존의 세상에 대한 부정적 판단에 대해 역사적 통계를 들이대며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이끌어내지만, 그들의 전제는 인간은 원래 선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인간의 본성과 역사에 대해 그들과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우선 사람들이 무인도에 표류해서 고립되었을 때 보이는 인간의 본성과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며 읽었고, 노벨문학상까지 수여된 윌리언 골딩의 《파리대왕》의 세계가 실제와는 다르다는 것을 실제로 벌어졌던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브레흐만은 인간의 폭력적인 본성, 권위에 복종하는 나약한 품성을 보여준, 역사적인 사회 실험인 필립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과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충격 실험’에 대해서도 깊숙이 들여다본다. 어마어마하게 인용되면서 짐바르도와 밀그램에게 명예를 가져다 준 실험이지만 다른 연구자와 브레흐만이 자세히 들여다본 실제 상황은 짐바르도와 밀그램이 발표하고, 또 많은 연구자와 언론이 다루고 결론을 내는 것과는 달랐다. 실험을 기획하고 수행한 이들이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도록 유도했고, 결과를 조작하기까지 했다. 연구의 결과 중에는 왜곡된 것이 적지 않았으며, 잘 재현되지도 않았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이른바 익명으로 살아가는 대도시에서의 ‘방관자 효과’를 나타낸 것으로 대서특필된 ‘키티 제노비스 사건’도 다시 조사해본 결과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렇게 냉담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문제는 어떤 것이 뉴스가 되는지에만 사건을 왜곡한 언론에 있었다.


전쟁 중에도 병사들은 대부분 총을 쏘지 않으며, 크리스마스에 서로 대치하고 있는 병사들끼리 노래를 부르고, 기꺼이 휴전을 했다.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지휘관일수록, 또 정치인일수록 그들에게 상대방을 향해 총을 쏘라고 다그쳤다. 그러나 서로 가까이에서 접촉하는 ‘사람들’일수록 잔인해지지 않았다는 증거는 너무나도 많다. 그런데 왜 세상은 점점 잔혹해지는 것처럼 생각할까? 브레흐만은 바로 그 화살을 언론 등으로 돌린다. 언론이 주목하고 생산해내는 뉴스가 과장하고 있으며(“뉴스는 썩은 사과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른바 ‘노시보(nocebo) 효과’에 의해 우리는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본성을 싸움을 싫어하고 서로 돕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브레흐만의 주장은 독창적이지만, 그다지 낯선 것도 아니다. 성악설, 혹은 홉스의 세계에 밀려왔지만 성선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고, 루소의 세계에 대한 옹호도 분명히 존재해왔다. 또한 브레흐만이 ‘인간은 선하다’라는 주장을 맹목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무조건 악한 것만은 아니며(그런 ‘지나친’ 낙관주의였다면 이 책의 가치는 매우 떨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선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방안을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긍정적 시각은 분명 가치가 있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처벌 위주의 교육관으로 이어진다. 그런 교육관이 실패하고 있다는 증거는 쌓이고 있다. 대신 세상과 인간에 대한 냉소주의 넘어 앞으로 나아질 수 있다는 신념은 그런 나아진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절망을 설파하는 세상보다 희망이 존재한다고 믿는 세상이 훨씬 살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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