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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May 24. 2021

실록이 기록한 괴물들, 역사를 이야기하다

곽재식,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원래 귀신이나 괴물 같은 것을 잘 믿지 않는다. 좀비 영화 같은 것도 그냥 좀비만을 가지고 노는 영화는 별로 보질 않는다. 그래서 조선 시대의 괴물을 다룬 책에 내가 애초에는 흥미를 가졌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역사 기록 속의 괴물을 다뤘다는 데 관심이 갔다. 역사 기록 속에서 괴물을 찾는 것 자체가 단순히 무서운 이야기나 기묘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을 기록했다는 것에 의미를 가져야 할 것 같았다.


우선 조금 놀란 것은 조선의 괴물 이야기가 기록 속에 심각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어우야담》 같은 야사(野史)에서야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유교적 이상을 추구하며 세워진 국가이며 망할 때까지 그런 기조를 유지한 조선이라는 나라의 정사라고 할 수 있는 《조선왕조실록》에 갖가지 괴물에 대한 얘기들이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작가 곽재식은 그 많은 기록 중에서 특히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된 괴물들을 중심으로 스무 개를 골라내서 소개하고 있는데, 단순히 그때 그런 괴물이 나타났거나 기록했다는 데 의의를 두는 게 아니라 그 괴물들을 보고한 이들이라든가, 기록된 사정 등을 역사적 맥락에서 해석하고 있다. 이를테면 세조 이후라든가, 연산군 이후라든가 하는 시기에 특히 괴물들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돌았다는 것은 권력이 자연스런 방식에 의해 넘어가지 못한 사정과 분명 관련이 있을 것이다. 또한 전란이라든가 반란과 같은 사건 전후에 더욱 그런 보고가 많이 올라온다는 것은 민심이 흉흉해진 상황에서 사람들의 심리가 그런 것을 믿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역사적 맥락 외에도 그 괴물들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를 나름대로 추측하는 대목들이다. 인어라든가, 용의 자손이라든가, 바다가 붉게 물들어지는 현상, 도깨비 등등이 어느 정도는 사람들이 착각과 과장이 가져온 것이거나, 또는 자연 현상에 대한 무지에서, 혹은 사람들의 바램이 투영된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면이 귀신이나 괴물을 믿지 않는 나의 구미에 맞는 대목들이기도 하다.


또 하나 의미 있게 읽은 부분들은 구미호라든가, 불가사리 같은, 전통적으로 우리의 괴물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근대 이후에야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들이 많다는 점이다. 또한 도깨비와 같은 경우에도, 우리는 장난끼 많은 도깨비를 연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도 최근 들어서야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는 점도 상당히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다.


곽재식은 이 이야기들을 소개하면서 여러 가지 제안을 하고 있는데, 어떤 것은 이런 식으로 이야기들을 엮어서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 만들면 좋겠다, 도깨비 마을이라든가, 캐릭터 같은 것을 만들면 좋겠다 등등. 괴물 이야기가 현대로 이어지면서 더 풍부해지고, 문화로서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작가의 입장에서 찾는 것 역시 의미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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