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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May 24. 2021

아낙시만드로스와 과학적 사고

카를로 로벨리, 《첫번째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


과학사 책들은 대부분 고대 그리스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특히 소아시아 지역(이오니아)의 밀레토스에 살았던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체로 받아들이길, 그냥 그랬구나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물이라던가, 공기, 혹은 불 같은 것들을 만물의 기본적인 원소로 생각했다던가 하는 기술은 지금의 과학적 지식과 너무나 멀어 보인다. 그러니 과학사를 이야기할 때 인류가 오래 전부터 그런 과학 전통을 가졌다는 것 정도로 받아들이면서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넘어갈 때가 많다.


그런데 이탈리아의 양자물리학자인 카를로 로벨리는 인류의 과학적 사고의 탄생이 바로 그때의 아낙시만드로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아낙시만드로스야말로 첫 번째 과학자라 불릴 만한 자격을 갖췄다고.


아낙시만드로스가 어떤 인물이기에,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주장을 했기에 그를 첫 번째 과학자로 지목하고, 과학자 사고의 탄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낙시만드로스는 기원전 6세기,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의 인물이다. 아마도 탈레스의 제자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는 우선 대기 현상을 신의 활동이 아닌 자연적인 원인으로 생각했다(빗물은 태양열 때문에 증발한 바닷물과 강물이이라고 정확히 봤다. 비록 지진에 대해서는 많이 그릇되게 해석했지만). 그는 또한 지구가 우주에 떠 있는 물체라고 봤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으나 위아래 없이 공간에 떠 있다고 본 것은 아낙시만드로스가 처음이었다. 자연을 이루는 근본 물질을 ‘아페이론’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세계를 필연적으로 관장하는 법칙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했다. 필연적인 원인에 따라 변화가 생긴다고 봤으며, 최초로 세계지도를 만들었다. 그리스 세계에 그노몬(땅 위에 수직으로 세운 막대로 그림자의 길이를 재서 태양의 높이를 알아내는 데 쓰인 도구)을 도입한 것도 아낙시만드로스라고 여겨진다.


즉, 당대의 자연에 대한 사고에 대해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킨 인물이 바로 아낙시만드로스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했기 때문에 카를로 로벨리가 아낙시만드로스를 최초의 과학자로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주장과 업적은 바로 과학적 사고를 통해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적 사고는 무엇일까? (사실 카를로 로벨리가 아낙시만드로스를 홍보하기 위해서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바로 아낙시만드로스를 통해서 과학적 사고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우해서 이 책을 썼다.)


카를로 로벨리는 과학이 절대불변의 진리를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코페르니쿠스, 뉴턴, 아인슈타인으로 이어지는 과학자들의 이론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리는 아니다). 그 단계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세계를 해석할 수 있는 지식을 찾는 것을 과학이라고 한다. 그런 활동을 통해서 사고의 범주를 확장하게 되는데, 바로 거기에 과학의 가치가 있다. 이전의 과학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이론과 관찰을 딛고 더 넓고 깊은 사고의 틀을 제공하는 것이 과학적 사고라고 한다면, 탈레스에게서 배운 아낙시만드로스가 스승의 이론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극복하고 더 발전시킨 정신이야말로 과학적 사고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아낙시만드로스가 과학적 사고를 탄생시킨 인물이라는 것이다.


과학적 사고를 통해 우리는 세계를 이해하고, 세계의 구조를 그리고, 세계관을 정립한다. 과학적 사고를 통해 세계에 대해 생각하는 법을 배우며, 가장 합리적으로 생각하기를 추구한다. 과학적 사고를 통해 나오는 과학의 활동과 결과물은 세계관을 진화시키고, 세상을 보다 풍요롭게 만든다. 그래서 “과학은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모험이다.”


그런데 카를로 로벨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문화적 상대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진실을 찾아가는 과학 활동의 무위성에 대한 주장이나 절대적인 진리를 주장하며 다른 주장을 일고의 가치도 없이 배격하는 종교의 반이성주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한다. 다른 문화를 접하고, 그 문화를 존중하고 주고 받으면서 새로운 사고가 탄생하는 것은 분명히 과학이 발전하는 중요한 기회가 되는 것이지만, 모든 것이 똑같이 옳은 것은 아니다(이를테면, 다윈의 진화론이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창조론을 똑같은 수준에서 가르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절대적인 진리를 주장하는 것을 보면 그런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의 개별적인 진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만의 진리를 주장하는 것은 과학적 사고도 아니며, 늘 인류사에 비극을 낳았다.


아낙시만드로스와 그의 동료, 후예 들이 탄생시킨 과학적 사고는 놀랍게도 이어지지 못했다. 로마로부터 중세에 이르는 일신교의 그늘은 과학적 사고가 피어나지 못하도록 했다.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현대를 과학의 시대라고 하지만, 이 과학의 시대를 꽃피운 과학적 사고가 어느 순간 사라져버릴 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낙시만드로스를 읽고, 과학적 사고가 무엇인지, 그것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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