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A May 27. 2021

유럽 왕실 독살 사건

엘리너 허먼, 《독살로 읽는 세계사》


독살은 옛날부터, 그리고 (이 책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지금도 꽤 유용한(?) 살인 방법이다. 많은 살인자들이 총이나 칼로 쏘거나 베는, 확실한 방법이 있음에도 정적(政敵), 혹은 연적(戀敵)을 살해하는 데 독살이라는 어쩌면 조금은 번거로운 방법은 쓴 이유가 있었다. 우선은 상대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특히 철통 같은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는 상대에게 접근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어쨌든 누구나 먹고 마시기는 해야 했으니까. 또한 그 흔적이 잘 남지 않는다. 독살로 죽는 것도 결국은 아파서 죽는 것이었으니 명확히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부검을 통해서 조사하고, 현대에는 놀라우리만치 정밀한 방법으로 독약의 흔적을 찾아내지만, 과거에는 기술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부분도 있었고, 부검이 이뤄지기 전에 처리해버리거나, 부검이 이뤄지더라도 의사만 잘 포섭하면 됐다. 더 큰 문제로 번질까 봐 덮기도 했다.


역사상 정말 수많은 독살로 의한 죽음, 혹은 그에 대한 의심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명백히 독살로 밝혀지지 않은 것도 독살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사라지지 않으며, 그것이 드라마로, 영화로, 혹은 책으로 나온다. 진짜 독살이라면 더욱 그렇지만, 독살이 아니더라도 그걸 의심할 만한 정황이 존재한다는 얘기니 정말 흥미 있는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엘리너 허먼의 《독살로 읽는 세계사》도 바로 그 흥미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다. 유럽의 왕가가 많았고, 그 안에서 암투가 끊이지 않았으니 독살은, 혹은 독살의 유혹은 넘쳐났다. 어떤 이의 이른 죽음은, 갑작스런 죽음은 언제나 독살의 의심을 샀다. 어찌 아니 그렇겠는가. 그 죽음으로 이득을 보는 이가 언제나 존재했으니 의심의 화살은 누군가에게로 향할 수 있었다. 그게 다시 또 다른 복수로, 즉 독살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 않기란 오히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3부로 나눈 이 책의 중심은, 당연히 많은 독살, 혹은 독살 의심 사례를 다룬 <2부 소문과 과학의 만남, 유럽 왕살 독살 사건>이다. 1부에서 독살에 관한 일반적인 얘기로 배경을 설명한 후 2부에서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7세부터 시작해서 나폴레옹까지. 열일곱 사례를 다루고 있는데, 어떤 것은 정말 독살이 확실한 것도 있지만, 독살이 아닌 게 확실한 사례도 있다. 또 어느 쪽인지 아직도 논쟁 중인 사례도 있다. 그런데 어느 쪽이든 (앞에서 얘기했듯이) 독살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 이 이야기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왕위라는 권력, 혹은 왕으로부터 나오는 권력에 대한 욕심, 혹은 질투 등으로 서로를 죽여야만 내가 사는 추악한 이야기들인 셈이다.


또 흥미로운 부분은 열일곱 개의 사례 가운데 왕실과 거의 관련이 없는 인물이 셋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의 천재 화가였던 카라바조와 근대 천문학의 시대를 연 튀코 브라헤, 위대한 음악가 모차르트가 그들이다. 사실 넓게 보자면 그들도 왕실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들이 왕실의 권력 암투 속에서 희생되었다고 볼 수도 없고, 현대의 검시 결과를 볼 때 그들은 누구도 독살당한 것 같지는 않다. 특히 모차르트의 경우에는 살리에르에 의심이 아직도 거둬지지 않았고, 그런 얘기가 영화를 통해서 확산되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사람들은 독살을 믿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런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독살 사건은 현대로도 이어진다. 현대의 과학 기술은 많은 독살설들을 잠재웠지만, 또 다른 과학 기술은 더 검출이 어려운 독살의 도구를 만들어냈다. 왕과 귀족의 권한이 약화된 이후에는 독살이 민간으로 내려온 측면도 있다. 그런데 엘리너 허먼이 특히 신경 써서 쓰고 있는 부분은 러시아를 중심으로 이뤄진 독살들이다(몇 년 전 북한의 김정남 독살 사건도 다루지만). 책 앞에도 러시아의 언론인인 무르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러시아에서 정적들을 살해하는 방법으로 독살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폭로하고 있다. 이는 정적을 살해하는 도구로서 독살이 과거 왕실에서나 벌어지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시대에도 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엘리너 허먼의 안위도 조금 걱정됐다.)


독살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세계사를 모두 조망할 수 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독살, 혹은 독살설에 대한 이야기가 그저 단순히 역사 속 흥밋거리만은 아니란 것은 분명하다.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역사의 흐름이 바뀐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으며(물론 만약 그들이 그렇게 죽지 않았다면, 이라는 가정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지만), 그런 죽음이 현대에도 여전하다.

작가의 이전글 문명의 재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