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바레스, 어느 트랜스젠더 과학자의 삶

벤 바레스의 『벤 바레스』

by ENA

논문검색사이트인 PubMed (https://www.ncbi.nlm.nih.gov/pubmed)에서 Ben Barres라는 이름으로 논문을 검색하면, 2002년부터의 논문이 나온다. 그러나 벤 바레스의 과학 경력은 그보다 이르다. 그의 모든 논문은 검색하기 위해서는 다시 Barbara Berres라는 이름으로 검색하거나, Berres BA라고 입력해야 한다.


<Nature>지에 난 그의 부고(그는 2017년에 췌장암으로 세상을 떴다)는 이렇게 시작한다(제목은 “Neurobiologist who advocated for gender equality in science”).

“Ben Barres (born Barbara Barres) was a passionate researcher of the role of glia, the most numerous type of brain cell, in development and disease. He was also an ardent campaigner for equal opportunity in science. He died of cancer aged 63, on 27 December 2017.”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17-089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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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Barbara Barres라는 이름으로 태어나서 Ben Barres라는 이름으로 죽었다. 스탠퍼드대 신경생물학과 교수였던 그는 나이 43에 성전환수술을 받았다. 오랫동안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지만 확신을 가지지 못했고, 불편했지만 성차별에 대해서도 심각성에 대한 자각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뒤늦게 자신의 상황을 파악했고, 남성으로 성전환을 하자 여성이었던 시절 차별의 실체가 인식되었다. 2006년 <Does gender matter?>라는 기고문은 유명하다. 당시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총장의 성차별 발언을 직격으로 비판한 글이었다. 학회에서 교수들의 성추행 등에 대한 서명을 받도록 압력을 넣었고, 대학에 뛰어난 여성 교수들의 임용을 추진했다(여성 교수가 없는 학교 학과의 세미나 초청을 바로 그 이유로 거부하기도 했다). 트랜스젠더 과학자로서 그는 전투적인 활동가였다.


그러나 그는 또한 뛰어난 과학자였다. 그의 논문 목록을 보편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질과 양이 압도적이다(질에 관해서는 내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내용이 아니라 출판한 저널의 명성만을 두고 판단할 수 밖에 없지만). 신경생물학 중에서도 신경아교세포(glia)를 연구했다. 단지 신경세포에 대한 지지 작용만이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신경아교세포가 실은 여러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혀낸 과학자 중 한 명이고, 또 가장 중요한 과학자 중 한 명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의과대학을 나와, 인턴, 레지던트 수련을 마친 후, 다시 하버드대 대학원에 진학하여 7년 동안의 박사 과정을 마치고, 다시 런던에서 박사후 과정까지. 그러면서도 그 지난한 배움과 연구 수련의 과정을 만족스럽게 여기고, 그 이후 스탠퍼드대에 자신의 연구실을 차린 이후에도 연구에만 정진했던 그의 과학에 대한 열정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다만 이 자서전의 2부에 해당하는 <과학>편은 일반인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내용이다. 그는 아마도 열정적으로 이 부분을 썼을 것이다. 그 열정은 이쪽 전공자들은 충분히 이해하고 감명받을 것이다. 분명히!).


거기에 그는 훌륭한 교육자였다. 스스로는 지신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와 박사후 과정의 지도교수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책 뒤편에 실린 제자 목록을 보면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그가 얼마나 뛰어난 교육자였는지. 그저 단지 과학만을 잘한다는 것으로 이렇게 많은 (각국의) 제자들이, 이른바 유명한 대학에 자리를 잡고 연구를 이어갈 수는 없다. “교수는 실험을 하는 사람도, 심지어는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도 아니다”라고 하며 자신의 대학원생들이나 박사후 연구원이 자신보다 훨씬 재능이 있다고 썼지만, 학생들이 독립적인 연구자로 우뚝 서기 위해서 얼마나 세심한 정성이 필요한지는 알만한 사람은 안다. 사실 그는 “How to pick a graduate advisor”라든가 “Stop blocking the posdoc’s path to success”와 같은 <Neuron>지와 <Nature>지의 기고문으로 이미 잘 알려졌던 과학계 멘토였다.


그가 이 자서전을 쓴 것은 췌장암을 진단받고 나서다(그가 낸시 홉킨스 교수에게 쓴 이-메일 편지에서 마지막 구절, “나, 진짜 많이 아픈가 봐”은 정말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프기 때문에 오히려 이곳저곳 불려다니지 않고, 연구에 몰입할 수 있어서도 좋다고 한 그는 진단받은 후 21개월 동안 시간 나는 대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트랜스젠더 과학자로 기억할 거다. 그러나 그냥 과학자로만 기억하더라도 그는 진짜 삶을 살다간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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