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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Jun 10. 2021

오딘과 토르를 만나다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 1》

아무래도 북유럽 신화라고 하면 낯설다. 리스, 로마 신화가 가지는 위상과 우리나라에서의 관심에 비하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한 위상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모든 신화가 가지는 보편성으로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지, 북유럽 신화만의 특수성은 어떤 것인지는 전혀 알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북유럽 신화의 신인 토르가 마블 시리즈에 등장하는 것 등을 보듯이 현대 서구 문화의 소재가 되어가고 있다.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안인희가 쓴 《북유럽 신화》에서 1권은 전 세계 모든 신화가 그렇듯 세상의 창조에 대해서, 그리고 신화에서 중심이 되는 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오딘과 토르와 같은 들어봤던 신이 등장한다. 오딘(Odin)은 북유럽 신화에서 최고의 신으로, 보단(Wodan), 보탄(Wotan)으로도 불렸는데 영어에서 수요일(Wednesday)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토르(Thor)는 오딘의 자식으로 농업의 신이자 천둥의 신인데, 목요일(Thursday)가 그 이름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이것만 봐도 유럽의 문화에 북유럽 신화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영향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1권에서 북유럽 신화에 대해 특히 인상 깊게 받아들이게 되는 부분은, 신화의 신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완벽하지 않은 신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의 불완벽함이란 주로 정신적인 면인데 반해, 북유럽 신화에서는 신체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신들이 등장한다. 우선은 최고의 신이라 할 수 있는 오딘은 애꾸눈이다. 지혜를 얻기 위해 한쪽 눈을 아낌없이 뽑아버렸다. 로키라는 신은 말썽장이로 온갖 문제를 일으키며 다니고, 가장 지혜로운 거인은 아예 몸을 잃어버리고 머리만 남았다. 토르는 멀쩡한 것 같지만, 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쇠망치 묠니르는 난쟁이들이 만드는 과정에서 로키가 훼방을 놓는 바람에 손잡이가 너무 짧게 만들어졌다. 그런 불완전한 신들이 이 세상을 만들어갔다는 상상력은 세상에 대해 (그 신화를 만들어낸) 그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또 인상 깊은 점은 신들이 한 약속에 얽매이는 모습이다.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 약속이더라도 어떻게든 지켜야 하는 세계가 그들의 세계다. 오딘부터 그랬다. 최고의 신이지만 자신이 만든 세계의 질서와 계약에 구속되고 복종하였다. 역시 그런 신들의 세계를 만들어낸 이들이 상상한 바람직한 세상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다툼이 빈번했고, 어지러운 세상이었지만 그들이 바란 세상은 한번 내뱉은 약속쯤은 지켜야 하고, 그 규칙 아래에서 당당하게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신화는 사람들이 살았던 세계와 그들이 꿈꿨던 세상을 이야기한다. 토르가 그토록 격렬하게 싸웠던 대상은 (마블 영화에서도 그렇듯이) 인간을 괴롭히는 온갖 거인들이었다. 그 거인들은 바로 북유럽에 살았던 이들이 이겨내야 했던 혹독한 자연 환경을 상징하고 있다. 사나운 추위의 겨울을 상징하는 서리거인, 거친 산악지대를 상징하는 산악거인, 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험한 바다를 상징하는 얼음바다거인. 북유럽인은 바로 그런 거친 자연 환경을 이겨내야 했으며, 그 역경과 바람을 바로 토르라는 신에게 투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화를 읽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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