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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Jun 27. 2021

수학은 꽤 쓸모 있다

스테판 바위스만, 《수학이 만만해지는 책》


우리말 책 제목은 ‘수학이 만만해지는 책’이지만, 수학은 절대 만만하지 않고, 또 이 책도 수학을 만만하기 보지 않는다. 수학을 사용하지 않는 부족은 분명 지금도 존재하지만, 그 부족들은 복잡한 사회 구조를 만들지도 못했다. 수학은 말하자면 일정 규모 이상의 사회를 발전시키고,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도구이며, 또 현대 문명으로 이를수록 더욱더 필요해지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수학을 처음부터 어려운 과목으로만 인식하고 자꾸만 밀어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의 효용성을 이해하고, 또 원리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노력 없이 이뤄질 수도 없는 것이다.


이 책을 쓴 스테판 바위스만은 수학철학자다. 수학철학자가 과연 어떤 것을 연구하는 것인지 언뜻 잡히지는 않지만, 이 책 내용에서 몇 가지 힌트는 얻을 수 있다. 한 가지는 플라톤과 셜록 홈즈와의 비교에서 나오는 것인데, 수학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수학을 플라톤의 동굴 비유에서 보듯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실재하는 추상적인 세계로 이해할 수도 있고, 셜록 홈즈의 이야기에서처럼 원래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세계로 생각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수학철학은 수학이라는 것을 어떤 것으로 보는지에 대한 학문일 수 있겠다 싶다. 또 하나는 아기가 ‘수’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실험을 소개한 데서도 수학철학이 어떤 데 관심을 갖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기가 덧셈과 뺄셈의 기본적인 인식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결과는 흥미롭기도 하고, 인간에게 내재된 수의 개념에 대한 철학적 인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수학철학자인 스테판 바위스만이 이 책에서 정말 관심을 갖는 것은 수학이 실재적인 것인지, 허상의 것인지, 혹은 아기가 수를 인식할 수 있는지, 아닌지 등에 관한 것은 아니다. 그는 시종일관 수학의 유용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런데 수학이 어떤 데 응용되는 것이니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라는 식의 설득이 아니란 점이 독특하다. 구글 맵스에서 최단 거리를 찾아가는 방법, 넷플릭스에서 선호하는 영화를 추천하는 방법에서 시작하면서 수학이 이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도구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거기에 담긴 수학의 구체적 방법을 설명하는 대신 거기에 담긴 논리를 통해서 수학의 유용성을 설득하는 방식이다.


물론 구글 맵스나 넷플릭스는 눈에 쉽게 띠는 예이다. 정말 수학이 현대 문명에서 하는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적분과 확률, 데이터과학 같은 것들이다. 바위스만은 차량 속도를 유지하는 방법, 날씨를 예측하는 방법, 현수교를 건설하는 데서 미적분의 유용성을, 암 판정에 대한 태도, 전염병의 원인을 알아내는 데, 정치인들이나 언론에서 교묘한 숫자놀음을 파악하는 데서 확률의 유용성을, 구글이 검색하는 방식, 항암치료의 성공률을 높이는 데서, 페이스북이 친구를 추천하고, 또 세일즈에 이용하는 방식에서 데이터 과학, 알고리즘의 유용성을 찾아내고 있다. 그런데 그는 이 수학이 반드시 옳다는 관점이 아니다. 또 거기에 내재된 수학에 모두가 통달해야 한다는 관점도 갖지 않는다. 다만 여기에 수학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의 원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세상을 훨씬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본다. 세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좀더 분명하게 살기 위한 하나의 도구가 바로 수학이라는 얘기다.


수학은 결코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도무지 정복할 수 없는 산은 아니다. 무엇보다 수학은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쓸모가 있는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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