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라이크의 『믹스처』
인류의 기원과 이동에 대해 유전학의 기틀을 마련한 이는 루이기 루카 카발리-스포르차였다. 그는 『유전자, 사람, 그리고 언어』 (이 책 『믹스처』에서는 『인간 유전자의 역사와 지리』란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다)를 통해 당시까지 알려졌던 고고학적 지식, 역사학에 유전학을 접목시켰다(데이비드 라이크는 자신이 카발리-스포르차 학파의 일원이라고 당당히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후 앨런 윌슨은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분석을 통해 ‘미토콘드리아 이브’, 혹은 ‘Out of Africa’ 설을 확립했고,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스반테 페보는 게놈 전체 염기서열을 이용하여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와의 관계 등을 규명하고 있다(『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데이비드 라이크는 바로 그 계보에 위치한 인류 유전학자이다.
그가 밝히고 있는 것은 고대로부터 현생 인류의 구성과 이동에 관한 것이다. 고대 인류의 화석에서 DNA를 얻고, 현재 인류로부터 DNA를 얻어 시퀀싱(sequencing)하여 관계를 추론한다. 그냥 단순히 서로 염기서열이 몇 개 다르니 관계가 가깝다, 멀다 수준의 것은 아니다. 특정한 위치에서 나타나는 염기서열을 확인하여 집단 간의 이동과 교잡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유령 집단’을 상정하기도 하고, 현재 한 민족, 혹은 집단에 섞여 있는 오래전 인류 집단의 기여도를 계산하기도 한다.
그의 연구 범위는 시간적으로는 현생 인류가 분화된 이후부터 현재까지, 공간적으로는 유럽, 중동 지역, 아메리카, 오세아니아와 동남아시아, 인도아대륙,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아메리카 대륙, 그리고 다시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지구 상의 전 지역을 아우르고 있다(적어도 인간이 살고 있는). 그의 연구의 결과는 솔직하게 복잡하다. 하나의 연구 결과를 세세히 설명하는 부분을 읽다보면(그는 무척 간략하게 소개한다고 하는 거겠지만)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때가 적지 않을 만큼 복잡하게 여겨진다. 그런 개별적인 연구들이 한둘이 아니고, 수십 개에 이른다. 그것 자체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논문을 읽어야할 것이고, 논문의 논리와 방법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또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아니 전공자가 아닌 이상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연구 결과들을 뭉뚱그려서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인류 집단은 무수하게 섞여 왔다는 것이다. 현생 인류라는 존재 자체가 그렇고(네안데르탈인과의 교잡 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구인류와의 교잡까지 포함해서), 유럽의 집단도, 중동의 집단도, 인도의 집단도, 아메리카의 집단도, 태평양 섬의 집단도, 동아시아의 집단도 그렇다. 예외가 없다. 그 집단의 기원이 어디서 왔든지 서로 섞이는 것은 인류의 중요한 습성이었다. 이런 분석은 사실 이전의 고고학적인 연구 등에서는 거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바로 유전학, 특히 고대 DNA 게놈 분석이 가져온 혁명이다. 어떤 인류 집단의 순수함이라는 것은 거짓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집단 구조는 수천 년 전에 존재했던 구조를 반영하지 않는다. 현재 세계 속에 있는 많은 집단은 더 이상 순수한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는 매우 다른 집단들의 교잡으로 생긴 것이다.”
이와 같은 연구의 결과들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또한 이런 연구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우선은 DNA 샘플을 얻는 데 따른 어려움이다. 특히 아메리카 원주민의 경우에 특히 그렇고, 특정 국가나 집단의 경우도 그렇다. 아메리카 원주민 같은 경우에는 그들의 생체 자료가 엉뚱하게 쓰여 왔던 전례 때문에 자신들과 자신들의 조상의 뼈나 DNA 자료를 이용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어려움은 이런 연구에 대한 선입견이다. 즉 인종 차별의 자료로 쓰일지 모른다는 우려다. 이는 나치 등이 이용했던(그러나 오용이었고, 잘못된 해석이었던) 역사에 대한 공포감과 두려움, 그리고 조심스러움이다. 그래서 르원틴 같은 이를 비롯해서 많은 학자들이 인종의 개념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인류 집단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자는 의견을 조심스럽게(참 돌고 돌리며) 쓰고 있다. 그것이 인종 차별의 근거로 쓰일 수 없으며, 쓰여서도 안된다는 근거를 들기도 한다. 너무도 조심스러우면서도, 연구자로서 그런 연구를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아주 간절하다. 내 생각엔 여전히 이런 연구가 잘못 쓰일 위험성이 없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것 때문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고, 또한 이와 같은 연구를 무작정 제한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무조건 부정하다가 그런 차이가 발견되었을 때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화이부동(和而不同)’과 같은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리타분하고, 또 너무 안이한가?).
이 책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 다다르는 과정은 쉽지 않다. 쉽게 설명한다고 했겠지만, 분석 기법도 그렇고, 집단 사이의 관계를 추론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은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난해하다. 그래도 인류 집단에 대한 연구에 유전학이 어떤 충격을 주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데는 이만한 책이 없다.
서술하는 방식이나 수준과 함께 좀 아쉬운 것은 한반도에 대한 얘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유전체 자료는 사실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을 얘기하고 바로 일본으로 건너간다(일본을 얘기하면서 한국을 얘기하지 않을 수는 없으므로 언급은 되지만). 저자가 모든 것을 다 쓸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