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바나 다카시, 도네가와 스스무의 『정신과 물질』
다치바나 다카시는 아는 사람은 아는 저자(著者)다(이 양반을 어찌 표현할 지 몰라 그냥 저자라 칭했다). 도네가와 스스무는 또 아는 사람은 아는 그런 발견을 한 면역학자다. 생물학, 혹은 면역학을 공부한 사람치고 이 사람 이름은 들어본 적 없어도 그가 밝혀낸 현상에 대해서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물론 노벨상을 받았다. 1987년 단독 수상이었다. 초창기를 제외하곤 노벨상 단독 수상은 정말 드문 일이다. 노벨재단 홈페이지를 보면, 그의 수상 업적을 “the genetic principle for generation of antibody diversity”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하고 있다. 우리말로도 쉽다. “항체 다양성 형성에 관한 유전학적 원리”를 발견한 공로다.
아주 간단히 설명하면, 외부로부터 침입한 물질(항원, antigen이라고 한다)에 대해 우리 몸은 면역 작용으로 항체(antibody)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문제는 항원의 종류는 정말 많다는 것이다. 항체는 항원에 대해 특이성을 갖고 있는데(거의 일대일로 대응한다), 우리 몸의 면역 체계는 그 많은 종류의 항원에 어떻게 그에 상응하는 다양한 항체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게 오랫동안의 의문이었다. 도네가와 스스무는 분자생물학의 방법을 이용하여 면역학의 오랜 질문이었던 이 메커니즘을 풀어냈다. 즉, 여러 유전자가 재조합을 통해서 다양성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원래부터 그만큼의 다양한 유전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정도의 다양성만 가진 여러 유전자가 조합함으로써 어마어마한 다양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해냈다. 1970년대 중반의 일이다.
이 인터뷰는 그가 노벨상을 수상하고 3년 후에 이뤄진 것이다. 노벨상 수상에 대한 여운이 채 가시기 전이었고, 그렇다고 들끓던 시절도 아니었다. 도네가와는 그냥 흥밋거리를 좋는 기자들의 인터뷰를 물리고, ‘마지막으로’ 진지한 인터뷰를 다차바나와 했다. 그가 연구에 입문하게 된 경위와 어떤 과정을 거쳐서 해당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연구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지. 이미 20년도 더 전에 이뤄진 인터뷰라 과학적 내용은 구닥다리다. 당시에는 그래도 최신이라고 할 만한 대부분의 기본 지식은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다루는 내용이 되었고, 도네가와가 발견하여 노벨상을 수상한 메커니즘은 면역학 책에서는 1, 2장에 등장하는 기본적인 내용이 되었다. 그러니 이 인터뷰에서 과학적 지식으로 얻을 만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지금 읽어서 그렇다). 현대 생물학의 속도는 광속(光速)과 같다.
그래서 흥미로운 것은 도네가와의 과학하는 자세다. 원래 학부에서는 화학을 전공했던 그가 분자생물학에 입문하게 된 계기나, 바이러스를 연구하다 면역학으로 옮기게 된 상황이나 그다지 심각해 보이지 않다. 어쩌면 진지해 보이지도 않는다. 스스로도 그렇다고 한다. 또한 이론적인 배경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다. 큰 고민 없이 자신이 흥미를 느끼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천착했다. 자신이 미국으로 유학 가서 초기에 한 연구에 대해서는 별로 의미 없다고, 시크하게 반응한다는 것도 특이하다. 그럼에도 그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과학자로서의 성공은 ‘운과 센스’에 좌우된다고 하는데, 경험상으로도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운과 센스 중 어디에 더 비중을 두느냐는 다를 수 있지만, 둘 중 어느 것이 없다면 쉽지 않다. 그러나 또한 지적하고 있듯이(“과학은 육체노동이다”), 그런 운과 센스를 갖춘 다음에는 성실함 역시 필요하다. 그가 유명한 그룹에 속하면서 얻을 수 있었던 잇점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는 최신 정보의 측면에서 주로 얘기하지만, 그 밖에도 그런 그룹에 속해 있다는 것은 평판의 측면도 무척 달라진다. 그의 성공은 그러한 요소들이 맞아떨어지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 여러 가지의 잇점을 가진 상황에서 당시 가장 최신의 기법을 중요한 질문을 풀기 위한 방법으로 이용하였다는 점이 바로 노벨상으로 이어지는 연구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그는 정말 놀랍게도 실험 기법의 측면에서는 얼리-어답터이다).
그 밖에도 이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것은 다치바나 다카시의 폭과 깊이다. 그가 던지는 질문과 도네가와의 설명을 듣고 이해하는 방식을 보면 이쪽 출신이 아니면서도 상당히 정확하게 핵심을 짚어내고 있다. 당시 이미 몇 차례 의학이나 생물학 계통의 취재를 한 바가 있었다지만, 이 인터뷰를 위해서 도네가와의 논문을 읽고, 해설도 읽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좋은 인터뷰가 되기 위한 우선 조건이 질문을 하는 사람의 준비성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은 ‘정신과 물질’이지만, 정신과 물질의 관계에 대해서는 인터뷰의 끝부분에만 등장한다. 사실 이 문제를 책 전체를 대표하는 제목으로 삼기에는 부족해 보이고, 이 인터뷰 이후 도네가와가 뇌과학에 그다지 공헌한 바가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역시 좀 과한 제목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MIT의 학습·기억 연구 센터장으로 있던 와중 불미스러운 일로 사퇴했었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서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