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르 봉의 『전쟁의 심리학』
귀스타브 르 봉이 이 책을 쓴 해는 1915년이다. 우리가 제1차 세계대전이라고 부르는 전쟁이 1년이 좀 넘은 시점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용어도 없었고, 그래서 그는 ‘이 유럽 전쟁’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고, 종종 ‘현재의 전쟁’이라고 지칭한다. 전쟁은 1918년에 끝났지만, 당시에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고, 독일의 프랑스 파리로의 진격 작전이 실패로 끝난 이후 지리한 참호전에 지속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그 전쟁’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다.
또 하나 이 책을 이해하는 중요한 사항은 이 책을 쓴 이가 바로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이다. 귀스타브 르 봉은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로 이 책 이전에 프랑스혁명에 관한 심리적 분석 등 군중 심리학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이였다. 그는 전쟁이 발발하고 1년이 지나고, 그가 입수할 수 있었던 자료들을 바탕으로 그 전쟁에 관한 심리학적 분석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심리학적 분석이라고는 하지만, 그 방향은 심하게 기울어질 수 밖에 없다. 프랑스는 독일의 ‘침략’을 받은 입장이었고, 독일은 물리쳐야 할 적(敵)이자 악(惡)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당연히 독일과 독일 황제, 독일 정치인, 독일 장군, 독일 국민을 분석하되, 철저하게 프랑스인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독일은 악(惡)이다."
저자는 영국, 프랑스, 심지어 독일까지도 원하지 않았던 전쟁이라고 모두가 전쟁을 두려워했다고 쓰고 있다(내 생각엔 두려워했던 것은 맞겠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라고 보지만). 하지만 실제로 전쟁은 발발했고, 왜 그런 사태가 일어났는지에 대한 분석이 저자의 임무였다. 그건 여러 원인들이 있었고(이를 테면 경제적, 정치적 원인들, 민족 사이의 증오감, 식민지 쟁탈과 같은 세계에서의 헤게모니 장악 등등), 그것들이 전쟁과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없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렇게 원하지 않던 전쟁이 일어난 원인에는 심리학적인 것이 중심을 잡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독일이 전쟁을 일으킨 그 심리학적 분석에서 가장 중심에 두고 있는 것은 ‘신비주의’다. 그 신비주의를 바탕으로 독일의 통합성(독일 통일이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이지만)을 강조하고, 나아가 독일인의 우수성을 드높이고, 그래서 당연히 독일이 세계를 점유해야만 한다는 의식으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그게 정서적, 집단적 힘으로 이어졌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분석은 지금에 와서 보면 전적으로 타당한 분석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분석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면, 독일인의 저열성과 파괴성 등등을 입증하는 근거로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 전쟁이 독일에 의해서 벌어졌고, 그들은 나쁜 놈들인데, 얼마나 나쁜 놈들인지를 입증하기 위해서 심리학적 분석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보면, 독일이 전쟁을 일으킨 주범이라는 인식 하에서도 그들이 ‘나쁜 놈’들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분석은 그렇게 의미를 갖는 않는다. 그 전쟁에 이르게 된 세계의 구도, 정치 경제적인 상황, 지도자들의 부족함 또는 오만 등등을 보았을 때 그 전쟁이 제대로 보인다고 본다.
대신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알게 되는 것은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하고, 루뱅 등의 고도(古都)를 무참히 파괴한 것이 얼마나 큰 과오였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영국이 적극적인 참전으로 나서게 되었고, 미국 내에서의 공분을 사서 역시 참전의 명분을 제공했다(전쟁이 끝나고 50년이 지난 후 나온 미국인 바버라 터크먼의 『8월의 포성』이 그런 시각을 보여준다). 또한 마른 전투가 결정적으로 프랑스 파리의 함락을 막고, 전쟁이 지리하게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역시 제1차 세계대전의 흐름을 좀더 현장감 있게 볼 수 있다.
끝으로 섬뜩했던 것은, 저자가 독일이 이 전쟁에서 지더라도 금방 재기해서 또 다른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는 점이다. 불행하게도 역사는 귀스타브 르 봉의 전망을 실행시켜버렸다.
“현재의 전쟁은 이성과 거의 아무런 관계가 없다. 역사 속의 전쟁들 대부분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전투는 이성의 도움으로 치러진다. 그러나 이성이 전쟁을 일으키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이유는 이성이 단순히 신비주의적, 정서적 충동에서 비롯된 필연을 보완하는 역할만 하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이성은 주인이 아니고 노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