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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Jul 21. 2021

게르만 신화에서 바그너로, 바그너에서 히틀러로

안인희,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


바그너는 게르만 신화, 즉 북유럽 신화를 자신의 오페라에 차용했고, 히틀러는 바그너에 열광했다. 그저 형식만 받아들인 게 아니었다. 바그너는 신화를 재해석해서 자신의 이념에 맞추었고, 그것을 대중에게 유통시켰다. 히틀러는 바그너의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를 받아들였고, 그의 흥행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게르만 신화 - 바그너 - 히틀러의 관계에 대한 이해는 결국 비극이 되어버린 역사에 대한 이해로 이어진다.


이 책의 중심은 누가 뭐래도 바그너다. <니벨룽겐의 반지>, <탄호이저> 등의 대작 오페라를 작곡한 음악가. 북유럽, 혹은 게르만 신화에 기초해서 문학, 음악, 무대 장치 등이 어우러진 종합 예술 작품을 만들어낸 이가 바그너다. 모든 대본을 직접 썼고, 음악 이론서도 썼던 그는 독일 민족주의, 나아가 인종주의를 퍼뜨리는 데 일조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그래서 우선 그의 작품의 중심 소재가 되는 게르만 신화가 어떤 것인지, 그것들이 어떻게 바그너의 작품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를 밝힌다(최근의 안인희씨의 《북유럽 신화》 시리즈는 북유럽 신화가 중심이고, 그것이 어떻게 바그너에게 연결되었는지가 부차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 바그너 음악의 외양과 메시지가 어떻게 히틀러에게 전해졌는지도 분석한다. 그러나 분량으로나, 분석의 강도로나 이 책은 바그너에 대한 책이다.


바그너는 음악적으로 그리 친숙한 음악가가 아니다. 이름을 알고 있지만, 그의 이름을 걸고 한국에서 흔히 연주되는 음악가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음악은 대체로 대작 오페라이고, 그 오페라는 북유럽의 신화에 기초하고 있어서 배경 지식이 없으면 어렵기 그지없다고 한다. 또한 바그너라는 이름은 음악이라는 분야에서만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거론되는, 이른바 문제적 인물인지라, 게다가 히틀러와 나치가 숭상했던 음악가라는 점에서 꺼림칙하기도 하다. 그러나 안인희는 바그너 음악이 어렵지만, 또한 쉽다고 지적하고 있다. 음악 이론에 무지하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음악이라는 얘기인데, 그만큼 대중적이라는 얘기다. 지금의 블록버스터 영화와 같은 의미를 지녔던 것이 그의 오페라라고 한다면 이해할 만하다. 그래서 안인희는 “그는 생각보다 엉터리고, 그런가 하면 생각보다 훨씬 더 천재적이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초기에는 그에게 열광했지만, 나중에는 그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가 된 니체가 있지만.


바그너는 자신의 이름이 히틀러라는 이름과 관련지어서 유명해지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음악을 통해서 유명해지고, 또한 길이 빛나는 명성을 얻고 싶어했지만, 자신의 인종주의가 한 정치인에 의해 증폭되고, 또 자신의 무대 장치가 그 정치인에게 영감을 주어, 독일 전체가 파멸의 늪에 빠져들게 되리라고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참 바그너라는 인물과 그의 음악에 대해 다층적인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그의 음악만 볼 것인지, 그가 남긴 유산을 비판하며 외면해야 할 것인지, 그 사이 어디쯤이 우리가 바그너를 대하는 정당한 태도일 듯한데, 그게 쉽지 않다. 이 책을 통해 바그너와 그의 음악의 본질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할 수는 있게 되었으나 여전히 의문과 망설임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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