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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Jul 24. 2021

색을 말한다, 색이 말한다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컬러의 말》


나는 색깔에 대한 감각이 별로인 편이다. 색깔 감각이 뛰어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어떤 신경생리적 차이가 있는지는 잘 모른다. 원뿔세포의 수나 품질의 차이인지, 혹은 받아들인 정보를 처리하는 중추신경의 차이인지... 아무튼 색에 대한 감각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며, 시대나 지역마다 색을 인지하는 감수성은 매우 달랐다(중세의 색 감각에 대해서는 미셸 파스투로의 《서양 중세 상징사》에서 진지하게 다룬다. 물론 이 책 《컬러의 말》도 중간중간 이에 대해 쓰고 있다).


우리가 시각이라는 것을 가지고, 또 색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색은 우리 삶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해오고 있다. 온통 흑백인 세상을 상상해보면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살아갈 수야 있겠지만, 얼마나 삭막하고, 단순할까 싶다. 색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생존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내가 색깔 감각이 떨어진다고 해도 빨간색과 파란색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한대다.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는 바로 그 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일단 색에 대한 일반론을 짧게 전개한 후(특별한 것은 아니다), 색깔을 계열별로 나누고, 각각의 색 계열에서 구체적인 색과 혹은 사물, 사건 들을 다룬다. 예를 들면 노랑 계열에서는 리드 틴 옐로, 인디언 옐로, 애시드 옐로, 나폴리 옐로, 크롬 옐로 등 나로서는 전혀 구분이 가지 않는 세분화된 색들을 주로 다루는가 하면, 검정 계열에서는 콜, 옵시디언(흑요석), 잉크, 차콜, 멜라닌 등 그 색을 가진 사물들에 대해서 주로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전체적으로 몇 가지를 생각하게 된 게 있는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우선, 색이라는 그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울트라마린이나 코치닐 같은 색 염료가 엄청난 가격으로 거래되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그밖에도 금보다 비쌌던 색 염료가 많았다), 새로운 색을 의도적이든, 우연이든 발견하고, 그것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게 그렇게 수월한 과정이 아니라는 게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어쨌든 이미 자연에 있는 색이지만, 그것을 우리가 다시 재생하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색에 대한 집착, 혹은 편견 등에 대한 것이다. 오랫동안 색은 신분을 구분하는 데 쓰여 왔고, 또 특정한 색은 거부당하기 일쑤였다. 일부는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되기도 하지만, 지금의 관점으로는 거의 근거가 없는 것들도 있다. 이 얘기는 우리가 색이라는 것에 얼마나 얽매어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어쩌면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그럴 것이라는 분명한 예감도 들고.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는 색에 관해서 짧은 호흡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각각의 색에 대한 깊은 역사는 보여주지 못하지만, 대신 그 색이 역사 속에서 가진 핵심적인 내용만큼은 분명하게 각인시키고 있다. 그렇게 색을 말하며, 색이 이야기하는 바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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