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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Aug 18. 2021

100년 전 팬데믹, 스페인 독감

캐서린 아놀드, 《팬데믹 1918》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캐서린 아놀드는 1918년에서 1919년 사이에 스페인 독감으로 희생된 많은 사람들을 기리면서 특별히 두 사람의 이름을 적고 있다.

오브리 글래드윈과 랠리지 배글리 글래드윈.

이 둘은 캐서린 아놀드의 조부모이자 스페인 독감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 죽음은 당시에는 너무나 많은 죽음 중 하나였기에 기억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죽음으로 고아가 된 저자의 아버지에게도 커다란 상처였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아버지는 그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고, 죽기 직전에야 털어놓았다. 그리고 저자는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고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코로나-19의 한복판에 서 있다. 사실 언제 끝이 날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이 한복판인지, 초입인지, 조금만 더 버티면 되는지 알 수 없다. 이 코로나-19를 얘기하면서 가장 많이 비교하는 것은 1918년,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전 세계를 대재앙으로 몰고 갔던 스페인 독감이다(감염병이 사회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면밀하게 분석한 프랭크 스노든의 《감염병과 사회》에서는 이 스페인 독감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조금 갸웃해지는 부분이긴 하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지금의 대유행병이 1918년에 필적한 규모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런 평가가 언제 바뀔지 모른다. 아무튼 죽음의 숫자로 평가한다면 스페인 독감은 지금의 코로나-19를 한참 뛰어넘는 비극을 양산했다. 캐서린 아놀드는 바로 그 20세기의 대재앙에 대해 쓰고 있다.


캐서린 아놀드가 이 감염병을 다루는 방식은 다소 독특하다. 그녀는 분석하거나 평가하지 않는다. 인플루엔자라는 바이러스 자체의 특성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고, 어느 곳에서 시작된 것인지에 대한 여러 가설을 두고 그 가설들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 평가하지 않는다. 독감이 어떻게 그렇게 퍼져 나갈 수 있었는지,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도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 물론 의학적 실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독감이 전 세계를 황폐화시키고 난 이후 사회가 어떻게 변했는지 사회학적 분석을 감행하지도 않는다(지금까지 읽은 많은 책들은 바로 그런 것들에 대해서 쓴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바로 사람들의 이야기다. 세계 각국, 각 지역에서 감염되고 쓰러지고, 죽어간, 혹은 극적으로 회복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을 기록한, 그리고 그들이 기록한 것들은 모아서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은 르포의 형태를 상당히 띠고 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들, 병원의 의사와 관호사들, 그리고 그 밖의 민간인들, 그들을 단지 숫자로만 파악하지 않고 개인들의 삶과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게 그 감염병이 사회적인 비극임과 동시에 개인의, 가족의 비극이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보통 말하는 영웅적인 행위는 드물지만, 바로 그런 삶의 이야기야말로 영웅적이고, 또한 감동적이다.


바이러스는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았다.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 영국 총리 로이드 조지와 독일 황제 빌헬름를 감염시켰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도 죽음 문턱까지 다다랐다가 살아났다.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화가 에곤 실레는 가족과 함께 저 세상으로 떠났다. 그런데 캐서린 아놀드는 감염에서 어렵사리 살아난 아이가 나중에 어떤 인물이 되었는지에 관해 적지 않게 기술하고 있다. 이를테면 해군 장교로 감염되었다 살아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공황을 극복하고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 유일의 4선 대통령이 되었다. 나중에 《분노의 포도》를 쓰고 노벨문학상을 받는 존 스타인벡도, 월드 디즈니도 어린 시절 스페인 독감에 감염되었다 살아난 인물이다. 그와 같은 기술들을 보면서는저 감염에서 죽어간 이들 중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인물이 되지 않았더라도 그 가족에게, 그 사회에 한 축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리라. 모든 죽음이 안타까우며, 특히 젊은 층에 더 높은 사망률을 보인 스페인 독감은 더욱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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