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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Aug 18. 2021

여름을 삼킨 소녀

넬레 노이하우스, 《여름을 삼킨 소녀》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통해 널리 알려진 넬레 노이하우스는 주로 범죄소설을 썼다. 하지만 이 《여름을 삼킨 소녀》와 《끝나지 않는 여름》, 《폭풍의 시간》으로 이어지는 셰리든 그랜트 연작은 그녀가 새로운 방식을 시도한 소설이다. 배경도 1990년대의 미국 중서부의 작은 마을(소설 속 표현으로 하자면 “전 세계에서 가장 지루한 장소 중 하나”)이고, 범인을 쫓지도 않는다. 작가는 1인칭 화법을 통해 한 소녀에게 소설 전체의 이야기를 맡기고 있다.


얼개는 열 여섯 살의 소녀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어설픈 사랑에 빠지고, 혹은 성적 욕망에 취하기도 한다(작가의 성적 판타지는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 사랑과 성(性)을 알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면서 셰리든 그랜트라는 아름답고 재능 많은 소녀는 더 이상 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그녀를 파괴하려는 힘과 그녀를 지탱시켜주는 힘 사이의 아슬아슬한 균형은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결국은 그동안 그녀를 둘러싼 가족이 거짓말 위에 지어진 모래성과 같은 것임을 폭로하고, 마을을 떠나는 것으로 《여름을 삼킨 소녀》는 끝을 맺는다. 성장 소설이지만, 성장은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더 큰 파고가 덮칠 것임을 예감하면서.


소녀는 여름을 삼켜버렸지만, 그 여름은 소화되지 않았고, 더 뜨거워지며 그녀 밖에서, 그녀 속에서 활활 타오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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