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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Aug 29. 2021

책을 읽다, 사람을 읽다

박홍규, 《독서독인 讀書讀人》


나는 궁금한 게 있다. 요새 대통령을 꿈꾸는 이들이 과연 어떤 책들을 읽어왔는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지금은 무척 바쁠 테니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야 접어둬야 할 것 같지만(그러나 그래도 그들이 뭔가를 읽고 있었으면 한다), 지금까지 어떤 독서를 통해 자신들의 현재가 이뤄졌으며,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 듣고 싶다. 그게 그들이 내놓는 휘황찬란한 공약보다, 다른 후보를 끌어내리려는 네거티브보다 훨씬 더 그들이 어떤 이인지, 과연 믿을 수 있는 이인지를 보여주리라 믿는다. 저자로서가 아니라(모든 대통령 후보는 자신의 이름이 박힌 책을 갖고 있다), 독서가로서 어떤 사람인지가 그 사람의 비전과 사람됨을 더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어떤 책을 읽었는지와 함께 그 독서가 어떤 형식의 것이었는지, 그 독서를 통해서 무엇을 ‘생각’했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에 관한 얘기는 거의 없다. 어떤 인터뷰에서도 그에 관한 질문은 없고, 후보들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빈약한 독서량 때문인 건지, 독서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회를 기자들과 후보들이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실망스러운 일이다.


박홍규의 《독서독인》은 인물을 판단하는 데 그 사람의 독서를 보는 것이 유효한 방법이라는 것을, 아니 결정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권력가, 혁명가 들의 독서(讀書)를 통해 사람을 읽고 있다(讀人). 그가 쫓아간 사람은 모두 스무 명. 이들은 둘로 나뉜다. 한 부류는 독서를 통해(혹은 독서에 반해) 권력을 쟁취한(내지는 훔친) 인물들이고, 또 한 부류는 독서를 통해 사회와 권력의 부조리를 깨닫고 권력의 맞선 이들이다. 전자의 부류에 포함된 인물들에는 독서에 심취했지만, 그 독서가 비뚤어지게 작용한 히틀러와 스탈린 같은 인물도 있고, 독서가 유명한 나폴레옹, 마오쩌뚱, 호찌민과 같은 인물도 있다. 링컨의 경우엔 그의 독서에 대해 조금 의심하고 있으며, 독서의 깊이 부족으로 인해 최악의 학살 국가를 만든 폴 포트와 같은 이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박홍규 교수는 이 전자에 포함된 인물들에 대해서 거의 모두에게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그나마 좀 나은 인물을 들라면 호찌민 정도다. 링컨에게도 그를 노예 해방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던 제국주의자로 평가할 따름이다(그래서 그를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 꼽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다).


반면에 독서를 통해서 권력에 맞선 인물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도 있고, 부족한 점도 있지만, 대체로는 긍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행동하는 혁명가라기보다는 영국박물관 독서실(리딩룸)의 죽돌이로서 독서가로 보낸 마르크스라든가, 여기서 아나키스트로 평가받는 톨스토이, 독서를 통하여, 또 저작을 통하여 실천적인 사상가로 거듭났던 간디, 유교적 병폐를 가차 없이 비판했던 루쉰 등이 그들이다. 그중에서도 박홍규 교수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인물은 체 게바라다. 자신의 태생적 조건을 독서로서 뛰어넘고 전투 중에도 책을 놓지 않았던 그를, 박홍규 교수는 ‘자유로운 인간’, ‘독서하는 인간’으로 평가하며 이것이야말로 ‘혁명적 인간’의 본질이라고 한다. 그는 “전체주의적으로 정해진 교육 체제를 벗어나 스스로 추구하는 독서야말로 진정한 자유, 따라서 혁명을 가능하게 한다. 독서하지 않는 혁명가는 없다. 평생 공부하지 않는 혁명가는 없다. 평생 반성과 성찰을 하지 않는 자는 혁명가일 수 없다.” (281쪽)고 쓰고 있으며, 이 전형이 바로 체 게바라다.


박홍규 교수는 스무 명의 외국인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정작은 우리나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주체적인 독서는커녕 읽지 않는 국민, 더 읽지 않는 권력자, 지식인에 대해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다. 왜곡된 독서 문화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지적하고 있으며, 철 지난 이론과 사상에 대해 한국에서만 환호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비꼬고 있다. 왜곡된 독서가 잉태한 괴물 같은 권력자 이야기를 보면 또 오싹해지기도 하지만, 난 그래도 왜곡되었어도, 철 지난 이야기라도 안 읽는 것보다는 읽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한다. 혁명가가 되기 위해서 책을 읽지는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최소한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교양과 나의 의견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다름 아닌 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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