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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Aug 30. 2021

인류가 열광해온 빨강의 역사

미셸 파스투로, 《빨강의 역사》


오늘날 빨간색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빨강은 오랫동안 가장 존엄하고 귀한 색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색이었다. 프로테스탄트 혁명 이후 색에 대한 색, 특히 강렬하고 눈에 잘 띄는 빨강에 대한 거부 이후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지만, 빨강은 여전히 국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색이며, 많은 상징과 의미를 지닌 색이다. 교통신호 등에 쓰일 때는 금지와 위험의 신호이며, 사람의 관심을 끌어당기기 위한 글자나 문양에 쓰이는 색이다. 또한 감각적 쾌락과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는 색이며, 기쁨을 나타내며, 따라서 축제의 색이기도 하다. 여전히 위엄과 영예를 보여주는 색이기도 하며, 심하게는 호전적 느낌까지 주는 활력의 색이기도 하다. 이런 빨강의 등장에서부터 지금의 이르기까지의 역사는 바로 인류 감각의 역사이며, 또한 (그 감각이건 정치적 의사이건) 표현의 역사이기도 하다.


색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역사를 다루는 것은 미셸 파스투로의 전문 분야이자 장기인데, 이 빨강의 역사야말로 인간과 색의 관계를 더욱 밀접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유럽을 중심으로 볼 수 밖에 없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빨강의 역사를 따라가면 인간이 색이란 걸 어떻게 인식하고 사용했으며, 또 거부해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각 부(part)의 제목대로, 빨강은 원초의 색에서, 선호하는 색으로, 수상한 색으로, 위험한 색으로 부침을 겪어왔지만, 그 부침 와중에도 개인과 사회에 다양한 의미를 지니며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아왔다. 빨강이 늘 위험을 나타내고, 혹은 사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사랑과 영광, 아름다움의 색이 되고,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여 고귀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높은 신분의 사람들만이 의복에 쓸 수 있는 색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사치와 타락의 상징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빨강의 아류인 분홍이 대세를 장악했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그런 역사는 한 가지 색이 그저 파장의 범위로만 파악되는 물질적인 세계가 아니라 인간의 감각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며, 문화에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으며 다양한 변주를 이루면서 인간의 역사와 관계를 맺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심지어 ‘정치적 빨강’도 그렇다. 지금 우리는 명백히 빨간색을 공산주의의 상징적인 색으로 인식하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피를 끓게 하는 색이 되지만, 어떤 이에게는 불편함과 역겨움을 넘어 배격해야만 하는 색이 되기도 한 것은 정치적 빨강이다. 그런데 그 빨강이 정치적인 의미를 띠며 공산주의의 상징이 되기까지는 단선적인 역사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셸 파스투로는 보여준다. 미셸 파스투로가 이 정치적인 색에 대해서 길지 않게 쓰면서 덧붙인 문장은 우리가 이 의미의 빨강뿐만 아니라 모든 색, 아니 모든 상징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재빠르게 동일시하고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환원주의적’ 태도는 색에게서 정서적, 시적, 심리적, 몽환적 의미를 모두 제거함으로써 색의 본래적인 특성을 변질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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