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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Aug 31. 2021

지리는 중요하다

미야지 슈사쿠, 《경제는 지리》


솔직한 마음으로 이런 일본 책을 보면 부러움이 앞선다. 분량이 많은, 전문적인 내용을 깊게 다루는 책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깊이를 가지면서도 간명하게, 읽기 좋게 추려내는 책들을 일본에서는 많이 펴낸다. 그건 이런 책을 수용할 수 있는 독서 인구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고(우리보다 인구가 2.5배 정도 많다는 것도 큰 이유이다),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저자가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또한 어떤 책쓰기와 책읽기에 관한 전통도 이런 쪽으로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부담스럽지 않지만, 기본적인 지식만큼은 충분히 다루고 있는 이런 책을 많이 나오는 건 부럽다.


이른바 대입 학원의 (우리 식으로 치면) 일타 강사인 미야지 슈사쿠가 쓴 《경제는 지리》는 그런 전형적인 일본 번역서다. 미야지 슈사쿠는 지리(地理, geography)를 ‘지구상의 이치’로 파악하며 지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지리는 물론 역사와 경제, 문화 등을 통합적으로 알아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알게 된 지리에 관한 지식은 다시 현재의 경제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모든 지리학자가 쓰는 지리, 지정학에 관한 책들이 다들 그렇게 얘기하고, 그런 식으로 지리를 다루지만, 미야지 슈사쿠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주로 경제)를 다루면서, 아주 세부적인 것은 일단 미뤄두면서 핵심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일본인이 쓴 책이니만큼) 일본과 관련된 지리적 문제, 그리고 그 지리와 관련된 경제의 문제를 중심으로 쓰고 있다(그래서 더 한국인이 쓴 세계 지리적 문제를 읽고 싶은 것이다).


학원 강사이지만 대입 관련한 내용만으로 책을 쓴 것도 아니지만, 학원 강사이니만큼 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만큼은 아주 철저하게 깨닫고 있는 듯하다. 내용이 요점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지 않고, 그래서 중언부언이 별로 없다. 그러면서도 핵심 내용은 장면을 달리 하면서 다시 등장해서 외우라고는 하지 않지만 저절로 이해하고, 머리 안에 저장되는 느낌을 준다.


물론 깊이 면에서 아쉬운 감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물론 매스컴에 힘입은 바가 적지 않지만) 팀 마샬의 《지리의 힘》과 같이 굵직굵직한 지리적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계의 지리 문제, 즉 지역, 혹은 국가 내의 문제와 지역과 지역, 국가와 국가의 관계를 입지, 자원, 무역, 인구, 문화라는 키워드를 통해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런 입체적인 조망은 어느 하나에 깊이를 주는 것만큼이나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한반도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외국인을 보면 우리의 국력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그런 것도 모른다며 비웃을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 국민 중에 보츠와나가 어디 붙어 있는지, 혹은 베네수엘라가 어떤 나라인지, 어떤 것으로 먹고 사는 나라인지, 우리와 어떤 관련성을 갖고 있는지를 물으면 몇 가지라도 대답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지리는 중요하다. 특히 세계가 좁아지고 더욱 연결된 현대에는 더욱 중요하다. 아는 사람만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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