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A Sep 04. 2021

과학, 가슴 벅찬 이야기

존 그리빈, 《과학을 만든 사람들》


“과학자는-그리고 각 과학자 세대는- 자신의 시대라는 맥락 안에서 존재하고 활동하면서 그 시대에 쓸 수 있는 기술의 도움을 받고 그 전에 이루어진 것을 바탕으로 삼지만, 기여할 때는 개인으로서 기여하게 된다.” (<맺음말: 발견이 기쁨>에서, 912쪽)


천체 물리학을 전공하고 과학도서 작가로서 이름난 존 그리빈은 이 거의 1000쪽에 가까운 책을 통해 과학의 역사를 개관하고 있다. 그가 과학의 역사를 개관하는 방식은 우리말 제목에서 보듯이 이른바 우리가 과학이라 부르는 활동 내지는 성과를 이뤄낸 사람들, 즉 과학자를 통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과학자의 업적에 주목하지만 그 과학자의 업적은 그 개인의 천재성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위의 인용문을 그런 관점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과학자가 개인으로서 과학 활동을 하고 업적을 남긴 것은 분명하지만, 그 사회의 기술에 제한되므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활동임에 분명하다. 또한 그런 과학자가 활동하는 분야, 즉 과학이라는 분야는 절대 개인적인 아니며, 또한 주관적인 것이 아니다. 과학은 절대적이며 객관적인 진실을 ‘다룬다’. 물론 어느 시점에서 진실이라고 여겨지던 것이 후대의 연구에 의해 뒤집히는 경우가 많지만, 그러한 경우에도 이전의 이론이 설명하던 것을 나중의 이론은 모두 설명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전의 이론 역시 과학의 성격을 분명하게 띠는 것이다.


그리고 존 그리빈은 저 유명한 토머스 쿤의 ‘과학 혁명’이라는 관점에 반대하고 있다. 그는 과학의 발전이란 “본질적으로 점진적,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본다. 어떤 업적인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경우는 없으며(심지어 쿤의 과학 혁명에서 가장 결정적인 예로 들고 있는 뉴턴 역학이나, 양자역학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많은 과학자들의 관찰과 실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과학적 통찰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존 그리빈의 과학에 대한 생각은 그냥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과학책을 서술하는 관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위대한 과학적 업적을 설명하기에 앞서 그 업적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거기에 다다르기까지 역할을 한 사람들까지도 등장시키고 있으며, 그들이 언제 태어나고, 어떤 부모, 조부모 밑에서 자라고, 어떤 교육을 받았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생각을 하고 업적을 남겼는지, 그리고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를 서술한다. 물론 그들의 업적에 대한 얘기가 중심이고, 나아가 그 업적이 과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후대에 어떻게 결정적인 이론에 이바지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다루지만, 한 인물의 삶에 대한 관심은 과학이라는 활동이 단순한 과학적 삶에서만 구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 책에서 또 하나 의미 있게 생각하는 것은 과학의 역사를 르네상스 시기부터 다룬다는 점이다. 많은 과학책들이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다루는 것과 궤를 달리한다. 이 역시 과학이라는 활동에 대한 관점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자연의 체계를 설명하는 원리, 내지는 지적인 활동으로서의 현대적 과학(science)의 의미가 비로소 시작된 지점을 르네상스 시기의 코페르니쿠스로부터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코페르니쿠스는 존 그리빈의 관점에서는 과학에 있어서 과도기적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생각에 대한 검증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 과학자들을 과학자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실험을 통해서, 혹은 다른 방식을 통해서 이론을 세우고, 검증을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혈액의 순환을 발견한 하비나 갈릴레오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자신들의 발견이 사실이라는 것을 객관적인 방식을 통해서 증명했다는 점이다. 과학이란 활동이 여타의 활동과 다른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이 놀라운 점은 이렇게 숨 막히게 방대한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게 썼다는 점이다. 두꺼운 책이니 읽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읽는 동안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단지 쉽게 썼다는 점에서 그런 것이 아니다. 과학자의 삶과 업적이 적절하게 어울리면서 과학의 업적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유연하게 쓰고 있어서 그렇다. 물리학, 생물학, 화학, 지질학, 천문학 등을 망라하면서도 그런 서술의 유연함을 놓치지 않고 있다. 다만 천문학 전공자라서 그런지 끝의 천문학 분야는 다른 분야에 비해 좀더 현재의 얘기로 넘어와 있게 자세하다. 반면 생물학에 관한 얘기는 현대의 발전에 비하면 매우 뒤쳐진 상태에서 마무리지어진 느낌이 든다. 그에 대한 아쉬움은 (존 그리빈은 나중에 썼지만, 번역은 이 책보다 이른) 《진화의 오리진》으로 달래질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단 며칠이지만 긴 여행을 한 느낌이다. 그 여행은 인류가 이룩한 가장 위대한 업적이랄 수 있는 과학을 정연하게 훑는 과정이었고, 과학이 그 자체로서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에서도 놀라운 성취였음을 다시금 깨닫는 과정이었다. 우리는 과학을 통해 자연과 우주, 생명에 대해 현재와 같이 이해하게 되었다. 정말 벅찬 이야기다.



작가의 이전글 지리는 중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