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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Sep 22. 2021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을 통해 역사를 읽는다

설혜심, 《애거서 크리스티 읽기》



설혜심 교수의 책은 전방위적이다. 내가 읽은 책만도 근대 영국 청소년들의 교육 방식이었던 그랜드 투어에 대한 책, 현대 소비 문화의 형성에 대한 책, 인삼이 세계사에 차지하는 영역에 대한 책 등이었다(물론 인터넷 서점에서 찾은 저서는 이보다 더 다양하다). 여기에 《애거서 크리스티 읽기》를 얹는다. 추리소설가 애거서 크리스티라니...


처음엔 난데 없다 생각했는데, <책을 펴내며>를 읽으니 그 사정이 지극히 이해된다. COVID-19로 제한된 행동반경, 사회적 접촉으로 우울감이 심화되는 와중에 어린 시절 즐겨 읽었던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다시 읽게 된다. 아마 그때는 재미로 읽었겠지만, 이제는 역사학자가 되어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애거서 크리스티라는 작가가 바라본 19세기, 20세기 초반 영국의 역사와 사회. 그 얘기를 이 책에 담았다. 팬심과 역사학자의 관점이 묘하게 어우러진 한 권의 책이다.


훌륭한 소설은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하면서 그 당대를 넘어서 보편성을 추구한다. 추리소설이 의식적으로 사회상을 반영하고 보편성을 추구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의식하지 않더라도 훌륭한 소설로서의 요소를 갖추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섬세한 역사학자라면, 그리고 솜씨 있는 저자라면 그런 소설을 통해서 그 모습을 잘 엮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접했던 설혜심 교수라면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그럼에도 조금 꺼려졌던 것은 내가 애거서 크리스티를 잘 모른다는 사정 때문이었다. 난 셜록 홈즈였지, 푸아르는 아니었다. 만약 내가 이 책에서 애거서 크리스티를 기대했다면 아마도 끝내 책장을 펼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밝혔던 믿음, 즉 한 작가의 책을 어떻게 이해하고, 또 그것을 통해 그 당시의 사회를 읽고 쓰는 솜씨를 보기 위해서 책을 펼칠 수 있었다.


기대대로 설혜심 교수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작품과 자서전, 그 밖의 그녀의 행보에 관한 자료들과 문헌들, 그리고 기본적인 역사 지식을 잘 어울러 놓고 있다. 그래서 영국인들이 집에 대해서 생각하는 관점, 전쟁에 병사로서 참여하는 것에 대한 생각, 당시 탈것의 상황, 에 영국인의 특성과 돈에 대한 생각, 계급 의식 등이 소설을 통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아주 설득력 있게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그저 단순히 당시의 사회상을 아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시대적 한계와 개인적 한계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 바로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이었고, 또 그것을 놓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엘리트 교육, 계급 의식, 그리고 제국주의적 의식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이는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면서 애거서 크리스티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설혜심 교수는 여기서 추리소설로서 애거서 크리스티를 즐겨 읽었던 학창 시설의 자신을 넘어선다.

“애거서의 소설은 주로 20세기에 집필된 것이지만 그 내요은 19세기 말 제국의 영광과 빅토리아 시대의 정서를 담고 있다. 20세기 후반 그 소설에 열광했던 시간은 영제국의 헤게모니를 자연스럽게 내재화하는 훈련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21세기에도 애거서의 콘텐츠는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244쪽)


추리소설일 뿐이지만, 그리고 꽤 오래된 소설이지만, 우리가 그런 소설을 읽을 때 무엇을 알고서, 무엇을 염두에 두면서 읽어야 할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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