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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Sep 23. 2021

빈대, 공존과 퇴치의 역사

브룩 보렐, 《빈대는 어떻게 침대와 세상을 정복했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내가 ‘빈대’를 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 봤다. 브룩 보렐이 지적하고 있듯이 빈대는 DDT를 비롯한 살충제 등을 통해서 거의 사라졌었다. 그러니 빈대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라든지, “빈대붙다” 등의 속담이나 사(死비)유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실제 본 적은 없었다. 그러던 빈대가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다시 등장했다고 한다. DDT나 피레스로이드와 같은 살충제에 대한 내성까지 갖춘 채로 우리의 침대 한켠에서 호시탐탐 우리의 피를 노리고 있다(그래서 빈대를 bed bug라 한다).




브룩 보렐이 빈대에 대해 알아보겠다고 한 것 자체가 그런 빈대의 재등장과 관련이 있다. 빈대에 물린 경험이다. 비록 심각한 감염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찜찜함을 넘어서 전율스런 공포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빈대가 출몰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지역에서 보고되고 있었고, 빈대를 구제하는 사업이 번창하고 있는 와중이었던 것이다.


빈대는 오래전부터 인류와 동거해왔던 곤충이다. 논쟁은 있지만, 대체로 인류보다 먼저 진화했고, 인간이 좋은 음식 제공자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인간에게 ‘빌붙기’ 시작했다고 보인다(‘빌붙다’라는 게 빈대에게 늘상 따라다니는 표현이지만, 조금 맞지 않는 게, 보통은 사람에게 붙어 있지 않다가 밤에만 기어나와 물어서 피를 흡입하고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다른 곤충과는 달리 이동성이 약하기 때문에 인류의 정착 생활과 빈대의 번성이 서로 맞물렸을 거라 추측은 당연하다. 밤에 자다 일어나면 여기저기에 깨문 자국과 함께 검은 배설물을 남기고 사라지는 존재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문화마다 빈대를 박멸하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했다. 주문을 외거나, 죽은 동물의 발을 침대 맡에 두거나, 말린 콩을 바닥에 두기도 했다. 수은을 처리하기도 했고, 속담처럼 불을 지르기도 했다(오죽했으면!).


그러나 희한한 것은 그런 빈대가 감염병을 옮기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런 의심을 지속적으로 받아왔고, 실제로 그 여부를 실험을 통해 조사도 해봤지만, 결론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빈대는 그저 유쾌하지 않은 동반자인 셈인데, 그 유쾌하지 않음 때문에 그 위험성보다 훨씬 큰 대접을 받는 셈이다.


브룩 보렐은 그렇게 인류와 함께 해왔던, 그러다 사라졌다고 여겨졌다가 다시 등장한 빈대를 찾아서 많은 문헌을 조사하고(사실 로버트 유싱어의 저서가 주된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미국은 물론, 영국, 독일, 동유럽 등지를 여행한다. 여러 컨퍼런스, 대학, 회사 등을 방문하고 인터뷰를 통해서 현대 빈대의 실체를 탐구하는데, 고작 빈대에 대한 열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진지하다. 하나를 깊게 아는 것이 과연 이런 노력의 결실이어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빈대를 없애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을 탈고 한 이후 불과 몇 주 후 과학기자 모임 참석차 묵은 호텔에서 빈대에 물린 저자의 경험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빈대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물론 내 주위에 빈대는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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