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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Sep 24. 2021

'우리'가 처음 겪는 팬데믹에 대해

니컬러스 A. 크리스타커스, 《신의 화살》

그리스의 신 아폴론은 자신을 섬기는 신관의 딸을 납치한 데 대한 보복으로 트로이 전쟁 중 그리스를 향해 은 활을 들어 화살을 빗발치듯 날려 그리스인들이 역병에 들게 했다. 그리스 출신 미국인 의사이자 사회학자인 니컬러스 크리스타커스는 2020년 초부터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COVID-19 팬데믹(범유행)을 바로 그 아폴론이 날린 화살에 비유하고 있다(이 책의 원제가 바로 《Apollo’s Arrow》이고, 이를 ‘신의 화살’이라 옮겼다).


의사이면서 공중보건학과 사회학 하위를 갖고 있으며 다양한 분야의 강의를 하는 니컬러스 크리스타커스야말로 아폴론이 쏜 화살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그리고 일관된 시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인물일지 모른다. 그는 정식으로 SARS-CoV-2라고 명명하는 현재의 코로나 사태를 불러일으킨 바이러스에 대해서 정확히 이야기할 수 있으며, 이 바이러스가 감기를 일으키는 다른 코로나바이러스와 이전에 팬데믹을 일으킨 SARS-CoV-1과 MERS 바이러스를 연관시킬 수 있다. (MERS는 우리도 잘 아는 바로 그 메르스이며(우리에게 큰 상흔을 남겼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그 존재감가 뚜렷하지 않았고, 그래서 길게 쓰고 있지 않다), SARS-CoV-1은 2000년대 초반 전 세계를 긴장시켰던 바로 사스의 바이러스이다. 이들은 모두 사촌지간이다.)


COVID-19 팬데믹 초기 중국에서 발생하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간 양상을 날짜별로 보여주고 있으며, 이 바이러스에 수많은 사람이 쓰러져간 모습들을 기술하고 있다. 이런 바이러스에 대한 의학적, 과학적 지식은 우리가 싸우고 있는 상대가 무엇인지를 잘 알게 해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우리가 안전해지고, 또 그것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크리스타커스는 신중하지만, 아주 열렬하게 전하고 있다. 이 질병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마스크와 신체적 거리두기(크리스타커스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표현이 잘못되었다고 본다)와 같은 비약물적 개입이 어떤 효과를 보이는지에 대해 거듭 강조하고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공익에 이바지하는 공공재와 같다는 표현까지 한다. 또한 이 바이러스와 질병에 대해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 다양한 측면에서 이야기하면서 진실에 대한 왜곡과 거짓말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비판한다. (그가 미국을 중심으로 쓰고 있으니) 그 비판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트럼프를 향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편의적으로 생각하는 좌우의 행동가와 언론에 대해서도 엄중하게 따진다.


또한 이 질병이 가져온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와 마녀 사냥에 대해서도 가차 없다. 바이러스는 지위나 빈부를 따지지는 않지만, 결국에 가장 피해를 입는 것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하층에 속하는 이들일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 우리가 외면한다면 이 팬데믹이 종식된 이후의 사회는 더욱 황폐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크리스타커스는 또한 이 팬데믹 와중에 인간의 선한 본성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의료진들의 헌신과 더불어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이 그러한 것이었으며, (어느 정도의 위험을 무릅쓴) 백신에 대한 임상시험자들도 평가받아야 한다.


그는 2020년 3월부터 8월까지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그 이후에 벌어진 상황을 담고 있지 않다(물론 에필로그에 2021년 봄까지의 상황을 언급하고 있지만). 그후의 상황을 아는 우리는 마치 전지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데, 그의 예측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지만(그는 백신의 개발이 이처럼 신속하리라고는 보지 않았다), 그의 전망이 전체적으로 그릇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는 우리가 이 팬데믹을 극복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떤 피해를 남기고, 어느 정도 선에서 종식이 될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역사는 어떤 역병이든 끝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 팬데믹 이후의 우리의 모습에 대해서는 마냥 낙관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앞에 놓여진 과제인 셈이다.


이 책에서 크리스타커스가 쓴 글귀 중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이렇다.

“코로나19 시대에 바뀌어버린 우리의 일상이 생경하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사실 생경한 것도 부자연스러운 것도 아니다. 전염병은 인간의 삶에 늘 따라오는 요소 중 하나다. 2020년에 벌어진 사건은 인류가 처음 겪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처음 겪는 일일 뿐이다.” (131쪽)

여기서 ‘우리’가 중요한 것 아니냐고 항변할지 모른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바이러스를 비롯한 병원체들은 그 ‘우리’를 가리지 않는다. 지금의 팬데믹은 하나의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이지만, 앞으로도 그런 역사적 전환점은 다시 찾아올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그 역사적 전환점을 맞는가는 바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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