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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Sep 30. 2021

우정의 기원, 진화, 그리고 미래

리디아 덴워스, 《우정의 과학》


시카고대학교의 존 카시오포와 UCLA의 스티븐 콜은 2015년 외로운 사람의 경우 면역 체계 조절에 분명한 변화를 가져온다는 논문을 <미국학술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외로운 사람들의 백혈구에서 발현 정도가 낮은 유전자들은 항바이러스에 관여하는 유전자였다. 외로운 사람들은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캐피태니오가 합류한 연구에서는 사회성이 낮은 원숭이들에게서 면역 체계 조절에 문제가 있다는 것도 찾아냈다. 염증 유발 유전자의 발현은 증가하였고, 바이러스 방어 유전자의 발현은 감소한 것이었다. 외로움은 원숭이나 사람에게나 질병으로 가는 통로였던 것이다.


오랫동안 우정은 학문적 관심이 아니었다. 과학의 대상으로 삼기에 정의도 불분명했고, 연구 방법도 정립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사망률이 증가한 만성질환이 스트레스와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와 관련이 깊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우정, 내지는 사회적 관계는 점점 주목받고 있다. 그저 주관적인 심리적 상태가 아니라 사회심리학, 신경과학, 면역학, 유전적 등의 생물학적 근거로 연구되고 있는 것이다.


리디아 덴워스가 지칭하고 있는 우정이라는 관계는 단순히 친구 사이의 감정 혹은 상태만으로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기의 애착 관계에서부터 디지털 세상에서의 관계, 노년의 유대 관계 등을 포함하는 보다 범위가 넓은 감정 상태와 관계이다. 또한 인간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하기가 힘든 상황도 있지만,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서 사람의 우정에 해당하는 사회적 유대가 마찬가지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적 뇌의 형성 과정이라는 인간 진화의 핵심 과정을 추적해보면, 아기의 뇌 역시 사회적 상호 작용이 이미 프로그램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우정, 내지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연구는 점점 첨단적인 과학 수단을 통해 발전하고 있다. 남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의 유전성에 대한 연구도, 뇌 속에서 어떤 부분이 그런 관계를 조절하는지, 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에 대한 회심리학, 의학, 신경생물학, 영장류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복합적인 다학제적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과학저술가 리디아 덴워스는 자신의 가족과 친구에 관한 개인적인 얘기와 그녀가 만난 과학자들, 읽은 논문과 자료들을 아주 잘 버무려 현대를 살아가는 지혜로서의 우정의 가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한 생애를 살면서 각 시기마다 서로 다른 종류와 깊이의 관계를 맺고 도움을 주고받는다. 그 어느 한 시기라도 우리가 고립되어 있다면 우리는 매우 낙담할 것이며, 상처를 입을 것이며, 심하게는 막다른 선택을 할 지도 모른다. 그런 관계에서 친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시기마다 달라질 수 있지만, 어느 시기에도 필요 없는 시기는 없다. 특히 노년에는 배우자보다 더 큰 역할을 한다고 한다. 행복한 삶의 마무리에 필수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우연찮게 이 책을 읽기 위해 가방에 챙겨놓은 상태에서 친구 둘을 5, 6년 만에 만났다. 5, 6년 전에 보기 전에도 한참을 보지 못했었다. 그렇게 띄엄띄엄 만나는 친구였지만, 친구는 친구였다. 마치 한두 달 전에 만났던 것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젊었을 적 오랜 시간 동안의 교류가 그처럼 끈질기면서 중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이 책을 덮으며 그런 관계들이 나를 만들어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걸 확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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