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주경철 교수는 ‘이상 국가’를 꿈꾼 문학 작품을 읽으며 그 작품들이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우리는 거기서 무엇을 생각하고, 배울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출발하여, 토머스 모어 이후 100년이 지나 나온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와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 계몽 시대 대표적인 계몽주의자 볼테르의 《캉디드》, 산업화 시대 이후에는 에드워드 벨러미의 《뒤를 돌아보며》와 윌리엄 모리스의 《에코토피아 뉴스》를 다룬다.
이 작품들을 보면 모두 그 사회의 문제점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이상 국가를 상정하고 있다. 그들이 상상한 이상 사회는 사실 극단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토머스 모어는 사유재산과 화폐가 폐지되고, 6시간 노동만 한 후 여유 시간 동안 정신적, 지적 교양을 쌓으며 고차원적인 행복을 누리는 사회를 상상했다. 캄파넬라는 종교가 지배하는 이상 국가에 대해서 썼다. 강력한 신정정치가 당대의 혼란스런 사회를 구원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반면 동시대에 베이컨은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과학기술 엘리트가 사회를 통제하는 이상 사회를 제시했다. 벨러미나 모리스 모두 불평등한 사회의 대안으로 사회주의 국가를 이상 사회로 구상했는데, 벨러미는 점전적이고 자연스런 변화를, 모리스는 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며 혁명 투쟁을 통한 사회주의 단계를 주장했다.
그런데 이런 이상 사회가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지, 혹은 실현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들이 달랐다고 볼 수 있다. 유토피아의 장점을 제시했던 토머스 모어는 끝에 가서는 그런 국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내비친다. 주경철은 이에 대해 사회의 해결책을 찾는 시도로서 하나의 이상 국가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토론을 유도한 것이라 해석하고 있다(그만큼 《유토피아》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그리고 사회 계몽에 낙관적이었던 볼테르지만 《캉디드》에서 사회 구조에 대한 혁신적인 제안을 거의 없고, 다만 현재 사회에 적응하면서 조금씩 개선해나가는 의견을 제시할 뿐이다. 현실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소극적인 태도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이상 국가, 이상 사회에 대해서 지금 현재의 시각으로 판단하면 비판적일 수 밖에 없다. 그들이 상정했던 이상 사회와 비슷한 실험을 수행했던 현실 사회주의는 100년도 지탱하지 못하고 실패했다(물론 그 실패의 원인은 다양하게 지적된다). 이상과 현실은 다른 것이라며, 인간의 본능을 억제하면서 추구하는 평등한 사회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냉소적일 수 있다. 그래서 벨러미나 모리스 같은 이들의 주장을 순진하다고 평가절하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주경철 교수가 지적하고 있듯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와 그것을 억압하는 요소”에 대한 고민과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할 지에 대한 고민, 그리고 열정을 그냥 무시하기에는 그들은 진지했고, 또 사회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19세기까지 유행했던 유토피아 소설이 사그라들었는데, 그에 비해 SF 소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보고 주경철 교수는 현대의 유토피아에 대한 고민으로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과 필립 딕의 《안드로이드》(와 이 작품을 영화화한 <블레이드 러너> 시리즈)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총화할 수 있는 로봇이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왔을 때 생기는 여러 모순과 고민할 점을 이 작품들이 제시해준다고 보는 것이다. 최근의 작품으로 본다면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이 비슷한 고민을 던져준다고 볼 수 있는데, 아시모프에 비한다면 필립 딕이나 가즈오 이시구로는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나아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과학 기술은 사회를 격변시킬 만큼 발달했지만 그만큼 거대한 기획으로서 근본적인 사회 변혁에 대한 고민을 적어진 셈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꿈꾸어야 한다. 우리는 이상 국가를 꿈꾼 이들을 단지 허황되었다고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꿈에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 있었고, 미래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생각한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생각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들의 고민을 이어받고, 그들의 문제점을 극복하면서 조금이라도 나은 사회, 국가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끊임없이 해나가야 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파악하고, 이제는 더욱 완전한 이상 사회를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앞서도 밝혔듯이 그런 기획은 이제 거의 없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를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조금이라도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이 없다면, 지금의 사회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하고 말 것이다.